세상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있다. 장미, 튜립, 후리지아, 백합 등등. 각각의 꽃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학생 한 명 한 명은 각각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지닌 꽃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런데 꽃집에서 꽃다발을 만들 때 대개는 장미나 후리지아 같은 화려한 꽃과 함께 안개꽃을 넣어 포장한다. 그렇게 하면 안개꽃 때문에 그 꽃이 더 아름다워 보이고 눈에 더 확 뜨인다. 이같은 방식을 고전 시학과 미학에서는 친탁(襯托)이라고 부르며 문학예술분야에 자주 사용하였다. 안개꽃은 장미꽃의 배경이 되어주면서 장미꽃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꽃
3월은 시작의 달이다. 캠퍼스에도 봄이 찾아와 봄 기운이 만연하다. 나무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그 싹은 자라 나뭇잎이 되고 꽃을 피우며 캠퍼스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한 해의 여정을 시작하고 있다. 겨우내 한산했던 캠퍼스에도 기대에 부풀어 새로운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들로 북적이고 있다. 많은 베트남 유학생들도 한국어교육원에서 한국어 교육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모든 시작에는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레임과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나의 한국 유학생활을 되돌아보면
인터넷을 사용하다 보면 우리는 가끔(아니 자주) 자신이 로봇이 아님을 증명하라는 요구에 맞닥뜨린다. 어떤 시스템에 접속하거나 로그인을 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특정 사물이 들어있는 그림 카드를 고르거나 다른 필요한 확인 절차를 통해 스스로 로봇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우리 인간이 이미 인간-아닌 기술적 존재들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최근 개발된 ChatGPT는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적 존재의 가능성을 새롭게 보여주고 있다. GPT-3은 인간과
우리는 흔히 문화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문화생활이란 ‘문화를 충분히 이용하는 생활’을 말하며,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소속된 사회의 집단사고와 그에 따른 행동방식이 만들어낸 일정한 형식을 지닌 결과물을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결과물로는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의 형식적 매체로 표현된 것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그리고 언론을 비롯한 여러 경로를 통해 이러한 결과물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고, 이를 경험하는 문화생활을 하게 된다. 이러한 문화생활은 즐거움을 주기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기도
얼마 전 대통령이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를 전후한 일련의 전개 과정이 보여준 사태는 우리가 처한 운명을 다시 확인해 주었다. 친숙한 낯섦이랄까. 익숙함은 일제 강점과 이승만 이래 친일 친미파가 득세한 현실에서 펼쳐졌던 풍경의 자동 반복 재현에서 온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마술사는 각설이처럼 죽지도 않고 또 온다. 낯섦은 고뇌에 찬 결단이란 명분으로 다수의 보편 정서를 대놓고 위반하는 점이다. 관습적 지각을 배격하는 탈자동화 수법을 예술의 영역이 아닌 외교 영역에서 구현한 점이 새롭다. 그러나 이 글의
흔히들 “밥은 먹고 사냐?”는 질문을 한다. 이는 일을 하거나 해서 생활의 최소 요건은 채우고 있는지 걱정스레 묻는 말이다. 그런데 겉보기로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말로 “밥만 먹고 사냐?”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이 말은 생활에 필요한 요건을 충분히 채운다고 해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 필요한 것이 더 있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이 두 비슷한 질문의 결정적인 차이 속에 현대인들은 살고 있다. 한편으로 밥을 먹기 위해 일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밥 외에 또 다른 무언가를 하기 위한 삶을 살려고도 한다는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한 시간 남짓을 달려 도착한 빈증성 디안의 작은 마을. 그곳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따스한 사랑의 손길에도 멀어져 있고, 그 작고 가냘픈 몸이 불편한 아이들에 이르기까지..생각만해도 가슴 한 켠이 아린 우리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2022학년도 동계 해외봉사활동에 참여해 학생들과 보낸12일간의 여정은 참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찬란한 햇살만큼 귀하고 밝은 우리 아이들을 만나러 가던 첫날이 생각납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 한남대 해외봉사단과 처음 마주했던 그 맑은 눈망울의 아이들. 고사리 같은
어미 새가 부지런히 먹이를 나른다. 아기새는 입을 벌린다. 봄날 캠퍼스를 품은 뒷산 풍경이다. 아기새는 날개깃이 다 자라면 스스로 날아 먹이를 찾아야 한다. 비행은 어미 새가 대신해줄 수 없다. 어미에게 배워 자신의 힘으로 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공부는 스승에게 배우면서 시작된다 .배우는 것이니 떠오르는 한자가 ‘배울 학(學)’자이다. 습(習)은 배운 것을 익히는 단계이다. 학습(學習)은 익숙한 말이면서 성장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다. ‘익힐 습(習)’은 새의 날개[羽]에 하얗다[白]는 뜻이 더해진 글자이다. 날개가 하얗게 보일
예전에 미국 유학 시절 경험했던 일이다. 필자는 2011년 가을 미국 뉴저지에 있는 한 신학 교에서 석사과정으로 유학을 시작했다. 숨가쁘게 첫 학기를 보내던 10월 31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이날 매우 신기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주말이라 늦잠을 자고 여유있게 일어나 보니 밖에 눈이 내렸다. 참 신기했다. 10월에 눈이라니. 미국 뉴저지가 원래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고는 들었는데 이렇게 눈이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눈이 조금 내린 것이 아니라 꽤 많이 쌓였다. 약30cm는 족히 더 온 듯했다. 때이른 첫 눈에 나름 낭만을 느껴보고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 3년간 활동한 신문사 활동의 끝이 보인다는 사실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얻어가는 것도 많았기에 시원섭섭한 감정이 그대로 뭍어나는 것 같다. 신문사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바로 내가 작성한 기사가 처음 신문에 실렸을 때다. 내가 직접 촬영한 사진과 인터뷰, 몇 번의 퇴고를 거쳐 완성된 온전한 내 글이 한 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직접 봤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후 기사 작성에 용기 및 재미가 생겨 열심히 노력한 결과, 3년 동안 활발히 활동할
이승아 기자: 언론은 중립을 지키며 독자들에게 알 권리를 보장하는 신성한 존재다. 언론은 자신의 성향을 띠고 있다. 흔히 말하는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과 그 반대 세력인 한겨레, 경향신문이 있다. 성향이 극과극이기 때문에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서는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봐야 한다. 이러한 언론의 성향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명확하게 나타난다. 노무현 대통령은 “군사독재가 무너진 현재 언론이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해시민과 정부 위에 군림하는 것 같다”라며 사실상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정치생활은 대통령에 대한
남미의 수리남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최근 공개되었다. 이 드라마의 악당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마약 판매를 위해 온갖 범죄를 자행하면서, 수도 파라마리보의 한인교회 목사로 행세하는 사기꾼이다. 그래서 그의 주변 인물들 역시 전도사, 집사로 불리며 악행을 일삼는다. 한국영화에서 악역이 목사를 자처하는 사기꾼으로 등장하는 것은 진부한 클리셰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고립되고 비밀스러운 공동체인 한인교회를 배경으로 강요받은 믿음에 심취한 이들의 이야기가 서브플롯으로 전개된다. 수리남의 마약왕으로 불리는 목사는 시도 때도 없이 ‘하나님의
- 중장 진급 및 군단장 보임 축하 행사에 대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먼저 부족한 저를 위해 총장님과 동문회 및 학생회분들이 성대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의 이 행사는 많은 우리 학교 동문 선후배들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 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학 시절 ROTC를 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제가 ROTC 후보생을 지원한 것의 가장 큰 계기는 옆집에 살고 계셨던 형님이 ROTC 선배님이셨습니다. 학창시
올해 한남대학교는 개교 66주년을 맞았다. 우리 대학은 국가와 사회와 교회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를 길러낼 목적으로 한국전쟁 이후 열악한 시대적 여건 속에서도 미국 남장로회가 혼신의 힘을 다해 1956년에 설립한 대학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초토화된 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너진 사회를 다시 일으키고 어둠 속에 헤매는 사람들을 이끌어 나갈 훌륭한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이었다. 본교를 설립한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은 1892년에 한국선교를 시작한 이래로 전도와 교육과 의료선교를 중심으로 한국의 가장 열악한 호남
H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묻습니다.‘대전시 대덕구 오정동 133번지’에서 ‘대전광역시 대덕구 한남로 70’으로 주소가 바뀌었더군요. 하마터면 이 편지가 H에게 전달되지 못 할 뻔했습니다. H를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주소가 바뀔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흘렀군요. H의 소식은 언론이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 늘 들어서 알고 있지만 얼마 전 H를 직접 대하고 보니 내가 알던 H가 예전의 그 H였던가 싶게 너무 많이 변해서 놀랍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H의 공간이 많이 넓어졌더군요. 60여 년 전 오정골에 대학을 세운 선교사들이
나로서는 중학교 때 처음 배운 영어 ‘school’, 이 익숙한 단어는 그리스어 ‘스콜레’(schŏlē)에서 유래한다. 학교가 처음 생기고 서양에서는 학교를 ‘스콜레’라 불렀다. 본뜻은 ‘여유’다. 불어의 ‘에꼴’(école)도 여기서 온 말이다. 왜 ‘여유’, 해석은 간단하다. 지금이야 교육평등의 이념이 보편화되어 누구나 학교에 간다. 그러나 옛날 학교에 다니는 일은 특권 중 특권이었다. 일하고 먹고살기 급급한 노예나 하층 계급은 학교에 다닐 여유가 없었다. 육체노동에서 자유로운 여유 있는 몇몇 귀족이나 지배 계급만 학교에 갈 수
캠퍼스에 봄이 왔다. 대학생들의 요란한 웃음소리와 함께. 올 봄이 특별한 이유는 지난 두 해 동안 보았던 적막한 캠퍼스의 봄과는 완전히 다른 봄풍경 때문이다. 그간 캠퍼스의 봄이 벚꽃과 목련, 개나리만의 반쪽짜리 봄이었다면 이번엔 대학생들의 웃음꽃과 함께 온 온전한 봄이다. 그렇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캠퍼스 주인공인 대학생들. 만약 그들이 없다면 이 넓은 캠퍼스는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들이 있다면 캠퍼스가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겠나. 이렇게 아름다운 봄소식을 들고서 캠퍼스를 가득채운 대학생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양 손을
세월 참 빠릅니다. 정년퇴직한 지 벌써 6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더 잊히기 전에 37년 재직기간에 있었던 추억 몇 꼭지를 되새겨 봅니다.‘동아리’란 단어의 유래를 아십니까? ‘동아리’는 1988년까지 ‘서클(circle)’이라고 불렀습니다. 1988학년도는 학생운동의 절정기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할 때였습니다. 당시 본교 서클연합회장이 학생과장인 제게 찾아와, “서클이 외래어이니 순수 한국말로 어떤 말이 좋은지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마 전국모임에서 명칭 개정을 논의키로 했던 모양입니다. 절친 동기인 국문학과 박영환 교수에
마침내 방역지침이 일상회복 단계로 바뀌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밝아졌고, 카페와 식당은 손님들로 붐빈다. 물론 2년 전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가려면 아직 극복할 장애물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팬데믹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돌아갈 일상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마스크를 벗는 것 외에 무엇이 달라질까? 여전히 먹고, 일하거나 공부하고, 잘 것이다. 일찍이 구약성서 전도서 저자는 말했다. 해 아래에 새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제의 해는 오늘 다시 떠오르고, 오늘의 달은 내일 또 비칠 것이다. 매일 아침
흔히 발굴이라 하면 인디아나 존스를 연상케 하는 고고학자가 붓을 들고 땅속을 조심스럽게 파내려 가는 것쯤으로 인식할 것이다. 가끔 매체를 통해 “한글 금속활자 1,600여 점 쏟아져”, “광화문광장 육조거리 발굴현장 시민공개” 와 같이 주목을 이끌만한 기사를 접할 뿐, 우리 생활과는 먼 얘기로 생각된다. 그러나, 1년간 1,500건 이상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문화재 발굴은 더 이상 먼 얘기가 아닐 수 있다. 필자는 1995년 대전 법동(현 한마음아파트 뒤편)에서 문화재 발굴조사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