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 식물의 영원한 전쟁
[자유기고] 식물의 영원한 전쟁
  • 한남대신문
  • 승인 2021.10.08 16:18
  • 조회수 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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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박물관 이흥수 학예사
▲자연사박물관 이흥수 학예사

식물은 약 4억년전 고생대 실루리아기(Siluria) 중엽에 쿡소니아(Cooksonia)와 같은 최초의 육상식물이 출현하면서부터 수없이 변화하는 환경 조건에 적응하며 일정한 장소에 고착되어 살아오고 있는 유기체이다. 이들은 스스로 서식처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변화하는 환경요인을 신속하게 감지하여 자신의 대사작용을 바꾸며 살아갈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특별히 중요한 부위가 아니면 줄기가 일부 잘려나가도 다시 새로운 가지를 만들어 냄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타고난 방어능력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 식물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장미, 찔레나무, 밤나무 그리고 선인장과 같은 식물은 많은 가시가 존재함으로써 초식동물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또한 강아지풀, 억새, 잔디와 같은 식물은 잎의 가장자리가 유리성분인 규산염으로 구성되어 있어 잎이 매우 날카롭기 때문에 또 다른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한다. 이들 식물은 수천년동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방어수단을 이용하여 수많은 위협에 적절히 대응하며 지금도 끝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또한 포식자와 천적관계에 있는 다른 생물과의 관계를 적절히 이용하기도 한다. 남아메리카 원산인 담배는 바이러스가 침범하면 이웃한 다른 담배에 경보물질을 발산하고, 이 신호를 받은 다른 담배는 면역물질을 만들어 내어 바이러스를 방지한다. 옥수수는 해충이 자신의 잎을 갉아 먹으면, 특수한 기체를 방출하여 이웃집 말벌에게 구조요청을 하고, 말벌은 잎을 갉아 먹는 애벌레들을 공격하여 처리해 준다. 어떤 식물들은 개미와 공생하면서 개미에게 서식처와 진액을 제공하고 대신 개미는 천적의 공격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해주며 이때 떨어지는 개미의 배설물은 식물의 영양공급원이 되기도 한다.

또한 식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동물의 냄새를 맡고 있다. 식물은 곤충의 공격으로 세포조직에 물리적 손상이 일어날 경우 자스몬산이라는 호르몬을 방출함으로써 식물의 방어기작을 위한 화합물이 만들어 지도록 유도하며, 휘발성이 있어서 이웃한 식물에게 경고신호를 보내는 구실을 한다. 미국 그랙(Gregg)박사는 자스몬산에 의해 유도된 단백질은 곤충 소화관에서 소화과정을 방해하여 결국 해충의 공격으로부터 식물자신을 보호하는 역할이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토마토는 악성해충인 행렬구더기로부터 공격을 받게되면 자스몬산이 방출되며 행렬구더기의 천적인 기생성 말벌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이때 말벌은 자신의 더듬이를 통해 자스몬산의 냄새를 맡게 되고 천적의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결국 토마토가 말벌을 유인해서 자신의 방어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식물은 생존을 위한 전쟁은 인간의 그 어떤 전쟁보다도 더욱 치열하다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식물은 지금 이시간에도 우리가 아직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며 새로운 방어물질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자연은 정말 위대한 존재이며 인간은 한낮 그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흔히 꽃은 참 아름답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향기 조차도 그들만의 생존을 위한 소리없는 영원한 전쟁의 일부분이며 그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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