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자유는 사회를 의식하고 기록해야 존재할 수 있는 것" -조지오웰 '1984' 서평
[독자투고] "자유는 사회를 의식하고 기록해야 존재할 수 있는 것" -조지오웰 '1984' 서평
  • 한남대신문
  • 승인 2021.12.13 16:01
  • 조회수 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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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공학과19 복승인
▲멀티미디어공학과19 복승인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추구하는 삶, 개개인마다 다른 가치관과 신념까지 모든 것이 금기된 사람들. 당은 그들의 육체와 정신까지 지배해 모든 것을 알아내고 굴복시키려 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되는 현실과 그런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들은 당에서 말하는 허상 혹은 실재에 분노를 느끼고 광적으로 흥분한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 처음 배운 감정이 외로움이 아닌 증오인 것처럼 그들 안에 증오는 내재되 어 있으며,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보였다. 증오와 행복은 상반되는 감정이지만 증오 속에 서 비로소 행복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 그들은 당의 모순성과 닮아 보였다.

삶에서 물음표가 사라진 순간, 그저 주어진 대로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부터 정신은 죽어있는 상태와 다름없다. 변하는 과거를 인지하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해진 그들이었지만 골드스타인을 증오하는 것, 대형에게 공포감을 느끼는 것 외에는 어떠한 의식과 노력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식이 깨어있지 않은 육체는 관절이 있는 덩어리일 뿐이다. 무지한 덩어리들 속에서 윈스턴은 날이 서 있고 예민했다. 언론 통제와 왜곡, 군중 심리 속에서 의식이 있던 그는 당에게 흰 도화지에 튄 얼룩같이 제거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언제든 죽음이 닥칠 수 있다는 공포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유를 위한 항해를 멈추지 않았다. 윈스턴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또한, 형제단처럼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분명 있을 거라는 얕은 희망으로 활기를 잃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예속을 벗어나 자유를 찾으면서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꼈다. 끝없이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세계에 살고 있는 무의식 덩어리들 속에서 그는 분명 찬란하게 존재했다. 비록 언제든지 다시 고쳐 쓸 수 있는 양피지 속에 존재했어도 자신의 존재와 기억을 말소되지 않게 기록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조지오웰의 1984 는 자유가 억압받는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모습에 불쾌함과 불안감을 느끼게 해준다. 동시에 논리적으로 설득될 수 없는 믿음의 위험 성과 의식하며 사고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오늘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의문을 갖고 문제를 탐구하기 어려워졌다. 납득과 수용의 가능성에 대한 기준치가 점점 투명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는 문제는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 퍼져 나가고, 사람들은 쪽수에 따라 언제든 생각을 바꿀 줄 알아야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비판적으로 의식하지 않는다면 시간 이 흐르고 외양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사회는 변한 것처럼 보여도 개개인의 우매성은 과거와 다를 것 없이 여전히 동결된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1984 속 정보가 차단되는 세상과는 다르게, 현재 사회는

전자기기와 미디어 플랫폼의 발달로 인해 네모 난 스크린 너머로 주어지는 정보들은 범람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노출된다는 점과 사회를 기록하고 검열하려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저 주어진 대로 흘러가게 살아가는 삶은 1984속 세상에서 봤던 것처럼 우리의 자유로운 삶을 위협한다. 사회가 우리를 기록할 때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지난 사회를, 현재 사회를, 미래의 사회를 기록하고 그려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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