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오월의 「김군」과 3가지 첨언
[독자투고] 오월의 「김군」과 3가지 첨언
  • 한남대신문
  • 승인 2022.06.09 14:12
  • 조회수 3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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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인
역사교육과 20


 올해 2022년은 5·18 민주화운동 제42주년을 맞는 해이다. 돌이켜 보면 ‘5·18은 4·19, 5·18, 6·10, 최근 촛불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서 지대한 역할을 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같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피해자들로 인해 유가족들까지 발생하는 형국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실현과 발전을 위해 나서주신 오월의 희생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예컨대 오월의 정신이 없었더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오늘을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윤석열 정부도 통합을 내세워 국민의힘 의원들과 5·18 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에 전원 참석하기로 결정한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 결정으로 오월의 아픔은 사라질 수 없겠지만 ‘국민 통합’과 더불어 ‘지역 통합’이 점진적으로 나마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본론으로 들어가 작년, 이맘때쯤 5·18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을 접했다. 「김군」은 5·18 에 촬영된 시민 군의 행방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덧붙여 군사평론가 지만원의 주장도 담기는데, 당시 기록에 남은 사진 속 인물들을 북한에서 침투한 특수 군이라고 언급하며 이를 ‘광수’라고 칭한다. 이에 강상우 감독은 의문을 품고 당시 항쟁에 나섰던 시민들을 찾아 인터뷰를 하면서 시작된다. 주 내용은 제1 광수를 찾는 여정이 카메라에 담긴다. 
 먼저, 광수라는 명칭을 다시 짚고 넘어가자. 지만원이 주장한 광수의 정의는 광주에 왔던 북한 사람들을 통틀어 일반적으로 광수라고 불렀다. 


 위 사진 속 인물을 2015년 6월, 지만원은 ‘제1 광수’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그의 정체를 북한의 전 농림상 ‘김창식’으로 지목한다. 지만원의 망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2년 동안 연구한 바로 5·18에서 광주 사람들이 시위대를 형성한 적이 없으며, 북한군 600명이 와서 저지른 폭동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부나비처럼 뛰어들어서 부역을 했고, 따라서 민주화 시위는 없었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다. 여기서 황당한 점은 지만원이 주장한 제1 광수를 제외하고도 북한 특수 군이라고 이야기하는 광수들이 몇백 명이 넘어갔다. 그러나, 곳곳에서 지만원이 광수라고 지목한 것들에 대한 반박도 제기되었다. 5·18 당시에 개입한 북한군이라고 지목한 사람들 가운데 알고 보니 시민 군 상황실장, 천주교 신부, 휴학생들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지만원의 도를 넘는 오류가 현재도 무던히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최근 기존 지만원의 발언이 망상이라는 것이 더욱 확실시됐다. 실제로 제1 광수가 나타난 것이다. 생존 여부가 불분명했으나 차복환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왔다. 518민주화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김군이자 제1 광수였던 시민 군 차복환으로 확인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작년, 필자가 「김군」을 보았을 시점에는 이미 신분을 밝힌 사실을 확인하고, 반년간 접촉하면서 해당 사진 속의 시민 군이 맞는지 탐문해왔으며 최종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차복환이 5·18 현장 속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한 여성이 “지금 군인들이 학생과 시민들이 죽고 있으며 나와서 참여해달라”라고 호소하고 있어 처참한 현장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 이후 차복환은 시위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전투 한 번 못하고 시민 군을 떠났다고 한다. 이후 40년 세월을 짓누른 죄책감이 밀려왔다고 한다. TV에서 5·18 관련 얘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고 심지어 배우자 차복환의 과거를 몰랐다고 한다. 차복환은 제1 광수로 세상에 회자되고 있는 것을 몰랐으며 배우자가 「김군」 을 보면서 알게 됐다고 한다. 그토록 찾았던 김군은 일반 시민이었다. 지만원의 터무니없는 망언으로 오월의 시민들이 호도되는 것을 마주하고 있다. 현재 이 시점에도 지만원은 주장을 뒤 없지 않고, 꿋꿋이 새로운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첫째, 아픔의 역사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픔 속에도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더불어 오월의 정신은 현재, 우리를 있게 만들어 줬으며 미래, 우리를 지탱하게 해주었다. 그렇기에 아픔의 역사로 기억하기보다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자. 둘째,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 과거부터 우리는 진실과 거짓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는 거짓은 물론이고, 진실도 비판적 사고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만큼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진실은 날 것 그대로 습득해도 마땅하지만 거짓으로는 페이크 뉴스가 우리 사회에 판을 치고 있는 실정이다. 페이크 뉴스라 함은 하루에도 적게는 수 백 개, 많게는 수 억 개가 쏟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지식인은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지식인이 아니다. 지식인에게 많은 정보는 기본이며 무슨 일에 대한 사실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가 뒤 받침 되어야 오늘날의 진정한 지식인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오월의 정신을 계승하고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 앞선, 선동가로 인해 우리의 오월의 정신을 마음대로 왈가왈부할 수 없다. 오월의 정신을 손상시킨다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을 것이며, 이후 세대들에게도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없다. 5·18에 관한 다양한 생각과 견해는 존중한다. 하지만 과거의 사실들이 훼손되지 않는 적정선을 지키는 수준이어야 한다. 오월의 정신은 우리나라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뿌리와 같다.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현재의 국민은 무엇이든 부당한 것에 복종하지 않고, 언제든지 일어서는 능동적인 국민을 만들어냈다.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도 과거에 비해 저조하다. 그 이유는 과거 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일련의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4·19, 5·18, 6·10, 촛불까지는 단지, 국민 공감대 형성도 있었겠지만 과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현재까지도 불씨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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