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는 정의를 상징하는 여신이 있다. 여신은 왼손엔 저울, 오른손엔 칼을 들고 있다. 저울은 정의와 불의를 판단하는 기준이고, 칼은 엄정한 집행을 상징한다. 또한 앞을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가려 사람이 아닌 오직 만을 바라보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한다. 이는 불의를 보면 칼을 내리치는 정의를 의미한다.

정의의 여신 사진
정의의 여신 사진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의의 여신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눈가리개를 풀고 정면을 주시하고 있고,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앉아 있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뜬 눈으로 당사자의 사정을 세세하게 살피고 저울에 달아 판단하며 법전을 공부해 판결을 내린다.’라고 서술했다.

한국의 정의의 여신이 자애롭게 살핀 대한민국의 법은 어떠할까?

 

[어린 사람은 미래가 밝아]

201791, 부산광역시 사하구에서 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발생일로부터 이틀 뒤 SNS를 통해 전말이 밝혀져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바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10대 중반의 중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바로 소년법 폐지 국민청원의 물결을 일으킨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이다.

폭행은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다. 1차 폭행은 가해자의 남자친구가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노래방에서 총 5명에게 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전치 2주 진단을 받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어서 발생한 2차 폭행은 경찰 신고의 보복성 목적으로 일어났다. 여중생 두 명은 계획적으로 피해자를 인근 공장으로 불러내어 공장 자재와 칼, 유리조각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 1시간 40분가량 폭행을 했다. 이 사건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후 공장 CCTV에 찍힌 영상이 SNS에 올라오며 공개되었다. 피해자의 생명엔 지장이 없었으나 폭행의 강도로 보았을 때 정신적 충격이 심할 것으로 여겨진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관련 사진(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관련 사진(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관련 사진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관련 사진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법은 가해 학생들에게 어떠한 처벌을 내렸을까?

지난 21, 또래 여중생을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의 가해학생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들은 형사법정이 아닌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되어 형벌 대신 소년부의 가장 강력한 보호 처분인 장기 2년 소년원 송치를 받았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은 매우 불량하지만 이들의 나이가 매우 어리고, 소년들이 사회에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소년보호처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소년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이 아닌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 현행되는 폭행죄와 비교했을 때, 매우 가벼운 판결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받은 판결과 현행되는 폭행죄의 차이는 무엇일까?

폭행죄는 여러 유형으로 나뉜다. 이 중, 소년들이 가한 폭행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것과 흉기를 소지하고 신체에 대한 폭행을 가함으로써 성립하는 특수폭행죄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으며 10년 이하의 자격정지까지 부과 받을 수 있다. 집단폭행죄는 일반 폭행죄에 비해 그 죄질이 무거워 피해자에게 심적 상처까지 줄 수 있기에 가중처벌이 가능하고, 청소년 또한 형사 처벌을 피해갈 수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반면 이와 대립되는 소년보호처분은 죄질에 따라 1호에서 10호까지 있으며 위 사건에 해당하는 10호는 2년 이내의 소년원 송치가 전부이다. 동일 범죄임에도 청소년이 낮은 형량을 선고받는 이유는 바로 소년법때문이다. 소년법은 UN에 소속된 회원국들에게는 모두 적용되어 있으며, UN아동권리협약 3조에 따르면, 18세 미만의 아동에게는 무기징역이나 사형 선고는 금지되어 있다. 청소년들이 미성숙한 선택으로 낙인찍히지 않고 속죄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는 소년법. 이 법안이 죄를 범했음에도 숨을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을 서두로 하여 인천 초등학생 살인’, ‘강릉 여중생 폭행등의 청소년 범죄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에 소년법 폐지의 여론이 크게 일고 있으나 UN에 가입되어 있는 이상 법안의 폐지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더 이상 어린 가해자들이 법의 자비로움 뒤로 숨지 못하도록 소년법 개정은 한시 빨리 검토해봐야 할 사안이다.

 

[술은 마음을 어지르는 것이라]

20081211, 경기도 안산에서 미성년자 강간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2009년 성범죄자 전자발찌 착용 사례로 시사프로와 뉴스에 소개되며 논란이 되었는데, 바로 조두순 사건이다.

조두순 사건 관련 사진
조두순 사건 관련 사진

 

대한민국 최악의 성범죄라 불리는 조두순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해자(조두순)는 등교중인 어린 피해자를 교회 안 화장실로 끌고 갔다. 이 후 저항하는 피해자에게 폭력을 휘둘러 기절시킨 후 정신이 없는 피해자를 강간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어린 피해자는 심적 상처를 동반한 심각한 신체 손상(최소 8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복부, 하배부 및 골반 부위의 외상성 절단의 영구적 상해 및 비골골절상 등)을 입게 되었다.

가해자는 전과 18범으로 살인, 강간치상 죄 등의 중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징역을 구형받았으나 1심 판결에서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가해자의 나이가 많고 만취로 인한 사물변별 및 의사결정 능력상실, 즉 심신미약이 그 이유였다.

8세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일어난 이 사건은 최근 조두순 출소 2년을 앞두고 다시금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만취 상태의 피고인의 형벌을 감형해주는 주취감형은 조두순 사건 전후로도 많은 판례를 볼 수 있다. 이처럼 많은 범죄자들이 음주 후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판결로 감형을 받자 이에 분노한 사람들로 하여금 주취감형 폐지에 대한 국민청원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주취감형 폐지의 여론이 강한 가운데 쉽게 폐지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형법에 주취감형이라는 조항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주취감형의 조항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판례에 나타나는 이유는 형법 제 102항과 3항에 해당하는 심신장애 감형과 관련이 있다. 형법 제 102항에 따르면 심신장애자로 판정되면 죄질이 어떠하든 형을 감경하는 법이 있다. 여기서 문제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사실상 음주 후 범죄에 대한 법 조항이 존재하지 않으며,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만취로 인한 범죄도 이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또한 음주로 인한 범죄는 위험을 예견하고 자의로 발생했다 보기엔 무리가 있어 3항에 위배되지도 않는다.

심신미약으로 인한 작량감경이 문제가 되자, 2012년 성범죄에 한해서는 주취감형으로 인한 심신미약을 적용하지 않는 규정이 만들어지기도 하였으나 성범죄 이외의 다른 범죄에서는 아직도 주취감형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경찰청이 발표한 ‘2016 범죄통계에 따르면 검거된 살인범죄자 중 39.2%, 10명 중 4명 가량이 만취상태였다고 한다. 그 밖에도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감형을 목적으로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지금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내세운 감형이 옳은 판결일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법의 자비로움 앞에 좌절하고 분노한다. 법의 자비가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닌 가해자를 옹호하는 판례가 종종 목격되는 것이 그 이유이다. 지난 6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사법부의 판결을 신뢰한다라는 항목의 응답률은 27.6%에 불과할 정도로 여론은 법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범죄의 죄질만으로 판단하여 칼을 내리치던 정의의 여신은 칼을 버렸다. 가린 눈을 뜨며 불의 뿐 아니라 사정까지 살피는 정의의 여신은 흡사 불의를 용서하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정의의 여신에게서 불변의 법과 이를 토대로 한 공정한 처벌을 기대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정의의 여신이 내리는 판결은 가변적이며 때로는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어 낸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뜬 후 가해자의 사정을 살피느라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오직 불변의 정의에 따라 죄를 판단하는 법원의 모습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 여신의 눈을 다시금 가리자.

 

출처 : 대한민국 대법원에 위치한 정의의 여신상 사진 - https://blog.naver.com/25akida/220883165890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CCTV사진, 피해자어머니 진술 재구성) -  https://tv.naver.com/v/2058348

 조두순 사건(조두순의 진술) -  https://blog.naver.com/vvvoman/8019688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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