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했던 학과위해 매월 저금한 것이 어느덧…" 발전기금 3천만원 쾌척 오현승 교수를 만나다
"열악했던 학과위해 매월 저금한 것이 어느덧…" 발전기금 3천만원 쾌척 오현승 교수를 만나다
  • 미디어 한남
  • 승인 2018.11.07 13:52
  • 조회수 43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업경영공학과 최초 교수로 본교서 28년 재직
대학평가실 근무하며 ‘최고등급 결실' 기억남아
학생때가 가장 꿈이있는 시절, 희망 가졌으면

지난 8월, 본교 산업경영공학과 오현승 교수가 대학발전 기금 3000만 원을 기탁했다. 오현승 교수는 1991년에 본교 교수로 부임해 약 28년 동안 재직하면서 기획처장, 공과대학장 등을 지냈으며 전 한국산업시스템경영학 회장을 역임했다. 한남대신문은 퇴임 기념을 발전기금 쾌척으로 마무리한 오현승 교수를 만났다.

 

-발전 기금을 기탁하게 된 계기는무엇인가요?

▲1989년에 본교 산업경영공학과의 최초 교수가 됐다. 당시 산업경영공학과는 학교 내 자리 부족으로 인해 야간에 수업이 있는 등 다소 열악한 상황이었다. 최초 교수로서 상황을 개선하고 도움이 되고자 매월 일정 금액을 모으기 시작했다. 근무한28년 6개월 동안 약 2850만 원을 모았는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총 3천만 원을 기탁하게됐다. 학교 전체를 위해 쓰였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학과 장학금으로 목적기탁을 한 상황이다.

-본교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학생들이 오고 싶어 하는 학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대학 공부의 전공 전문성이 다소 떨어져 있는 상태다. 따라서 자기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내용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공대라고 해서 자연계 과목의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닌 인문학 공부에도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본교 재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1994년부터 3년간 대학 평가실에서 근무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996년에 처음으로 현재의 대학역량평가와 비슷한 대학 평가가 실시됐다. 이 평가는 1994년부터 3년간의 계획을 토대로 이뤄지는데, 당시 대전 소재 사립대 중에서 유일하게 본교가 최고 등급을 받았다.

-본교에 재직하는 동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89학번부터 94학번까지는 지금까지도 얼굴을 보는 순간 바로 이름이 기억이난다. 당시엔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학교, 학과 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학교 업무를 주로 맡아 하게 되면서 학생들과 함께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가깝게 지내지 못한 부분이 아쉬움이 남는다.

-퇴직 후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일단 내년까지는 본교 대학원에서 수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현재 국방부 검증위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내가 가진 지식을 활용하여 일 할 계획이다. 추후에는 봉사하며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지나보니 학생 때가 가장 꿈이 있는 시절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힘든 시절은 모두 지나간다. 앞으로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큰 꿈을 가지고 다양한 경험을 쌓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