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되짚어보다
한글날을 되짚어보다
  • 미디어 한남
  • 승인 2018.11.07 14:08
  • 조회수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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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종 한남대 국어문화원 위촉연구원
이기종 한남대 국어문화원 위촉연구원

 

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한글날은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의 연구와 보급을 장려하기 위해 정한 날이지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또 유일하게 제 나라 글자를 만든 사람과 만들어 공표한 날이 존재하는… 그러기에 한글날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고 기릴 만한 날입니다. 더욱이 1949년부터 공휴일이었던 한글날은 1991년에 이르러 경제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2013년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는 등 나름의 굴곡의 역사까지 지녔지요. 물론 어찌 한글날만 그렇겠습니까? 2018년 오늘의 한글의 현주소는 어떨까요? “잘되거나 잘 안 되거나 하는 일이 번갈아 나타난다”는 ‘굴곡(屈曲)’과는 달리, 이제 우리말은 내리막길이자 사양길 같아 참으로 안쓰럽습니다. 훈민정음 서문,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서로 사맛디 아니할새…”는 이젠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말이 온갖 언어와 사람들마다 제 각각 달라 서로 통하지 아니 하므로”로 말입니다. 우선 외국어, 특히 영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도를 넘어선지 오랩니다. 당장 학교 홈페이지(누리집)에만 들어가도 ‘캠퍼스(교정)’, ‘스펙(깜냥)’, ‘커리어데이(?)’, ‘경력마일리지(경력이용실적점수)’ 등의 외국어가 쏟아집니다. 하긴 우리 고유의 술, 막걸리마저도 수출한답시고 영어이름을 공모해 '드렁큰 라이스(Drunken Rice)'라고 부르는 나라, 행정기관명인 ‘동사무소’조차 ‘주민센터(center)’로 쉽게 바꾼 나라, 그러다 보니 세상변화에 따라 ‘시장’과 ‘장보기’는 ‘마트’와 ‘쇼핑’으로, ‘머리방(미장원)’의 ‘미용사’는 ‘헤어숍’의 ‘헤어디자이너’로, ‘요리사(주방장)’는 ‘셰프’로 쉽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이런 차별화 전략의 배경에는 지식인, 부자, 상류층일수록 영어를 선호하고 일반 서민일수록 우리말에 친숙하다는 얄팍한 경제논리가 숨겨있습니다. 영어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언어라는, 그런 의식이 영어사용을 부채질할 뿐더러 영어가 지배층의 언어로 위세를 떨치게 합니다. 이젠 무분별한 영어사용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말을 가꾸고 지키자는 ‘순화’도 글로벌시대, 다문화사회 논리에 묻혀 빛을 잃은 지 오랩니다. 행여 이러다 서양 사대주의에 빠져 제 나라 문자를 만드는 데 반대한 최만리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다시 한글날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휴일의 달콤함에 빠질 것이고, 관계자들만의 기념식과 몇몇 언론에서의 한글날 특집만으로 그렇게 한글날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나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민주사회에 어울리는 소통의 언어를 모두가 쉽게 익혀 쓰도록 하는 것, 이것이 한글날의 참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백여년 전에 통치의 언어를 내려놓고 백성들과 소통하고자 했던 세종대왕! 이제 우리 스스로 언어의 눈높이를 맞추거나 문턱을 없애는 일에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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