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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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이
  • 승인 2018.11.2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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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634 문예창작학과 이진웅

내가 들고 있는 활은 현이 다섯 개입니다. 두 옥타브 낮은 시까지 낼 수 있어요. 정확하게 측정하진 않았지만 아마 그 소리는 30헤르츠 정도겠지요. 음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지금 한 번 켜보겠습니다. 들렸나요? 음 같지도 않지요? 얇은 바람이 성급하게 지나가는 소리 같을 거예요. 사실 현이 다섯 개까지도 필요 없어요. 가끔 집에서 혼자 시험해 보곤 합니다. 두 옥타브 낮은 시가 콘트라베이스가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음도 아니고요. 마음만 먹고 집중하면 더 낮게도 가능합니다. 그것을 시험해 보는 것이 제가 집에서 하는 일입니다. 왜 낮은 음에 집착 하냐고요? .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듣고 싶은 거죠.

대충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 단원 유일한 여성 콘트라베이시스트죠. 왜 하필 콘트라베이스냐고요? 그냥 그렇게 된 거예요. 당신이야말로 지금 그 직장을 다니게 될 줄 알았나요?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 아닌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 제가 잠시 흥분했군요. 죄송합니다. 사실 저는 피아노를 전공했습니다. 그렇게 음악 공부를 하고 식견이 넓어지고 나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은 적이 있는데 평소에는 전혀 들리지 않던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들리더군요. 전 그 소리에 묘하게 이끌렸답니다. 비유를 하자면 성악가의 목소리나 피아노 소리, 바이올렛 소리가 날아다니는 요정이라면 콘트라베이스는 마치 모든 것을 품는 비옥한 대지 같았어요. 그 웅장하면서도 푸근한 모습이 제 눈앞에 나타나 뺨을 쓰다듬었죠. 그 때 이후로, 아니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요?

오후 2시가 되어가는군요. 남들 일 할 시간에 뭐하냐고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오케스트라 단원입니다. 한 중견기업이 운영하고 있죠. 인원수는 총 열다섯 명이에요.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쉽게 말하자면 음악 샐러리맨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편하실까요? 좋아하는 예술도 하고 월급도 받는 돈과 예술의 절충안이죠. 하나 같이 좋은 직장이라고 부러워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 안전하고 기막힌 직업이 오히려 족쇄처럼 느껴져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하루하루 같은 음악을 매일 켠다고 생각해 보세요. 클래식 음악이야 워낙 다양하지만 대중이 듣고 싶고 좋아하는 음악은 한정되어 있단 말입니다. 결국 할 수 있는 음악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게다가 연습실은 지하 삼 층인데 무대는 아치형이라 동굴에서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어요. , 또 격양됐네요. 죄송합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아니, 사실 이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아까 했던 질문이 뭐였죠? , 남들 일 할 시간에 집에서 뭐하냐고요? 근신중입니다. 이 말하기가 부끄러워 괜히 돌려서 말했습니다. 연습실에서 문제를 좀 일으켰거든요. 보채지 마세요. 말씀드릴 거니까.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콘트라베이스는 사실 제 것이 아니에요. 그냥 좀 아는 사람에게 빌렸습니다. 집에서 콘트라베이스 특유의 낮은 음을 듣지 않으면 진정되지 않거든요. 빌리는데 애 좀 먹었습니다. 사실 제가 콘트라베이스 두 개를 깨버렸거든요. 아니 누가 깨트렸습니다. 아무튼 전과가 두 번이나 있는 사람한테 누가 그 비싼 콘트라베이스를 빌려줄까요. 이 악기는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가격이 올라갑니다. 처음에 깨진 콘트라베이스가 1990년도 독일에서 만들어진 값진 악기입니다. 가격을 보면 놀라실 겁니다. 두 번째 콘트라베이스는 2000년도 한국산이지만 그 가격도 만만치 않았죠. 두 개다 똑같은 장소에 부서져 있었고 나름대로 추리해 봤는데 용의자는 두 명입니다. 한 사람은 삼십대 남자 성악가입니다. 테너를 맡고 있고 인기가 엄청나죠. 제가 일 년을 무대에 서야 받을 박수를 한 달 만에 휩씁니다. 또 한 사람은 좀 앳돼 보이는 이십대 중반 남자입니다. 저한테 콘트라베이스를 배우고 싶어 하는 견습생인데 계속 거절했죠. 이 두 사람 중에 한 명이 제 악기를 깼을 겁니다.

 

 

내 콘트라베이스가 제일 좋아하는 건조한 아침이다. 나는 토스트로 대충 끼니를 해결하고 바람을 쐬던 악기를 케이스 안에 넣었다. 언제나 접혀있는 조수석에 콘트라베이스를 태웠다. 그 존재감은 차안을 가득 채우는데 운전을 거슬리게 하지만 예민한 악기에겐 어쩔 수 없는 양보였다. 그렇게 익숙한 불편함으로 출근을 한다. 사실 이 콘트라베이스는 이번에 새로 장만했다. 일주일 전, 원래 쓰던 90년대 독일산은 누군가에 의해 부숴 졌다. 콘트라베이스도 나름 단단하기에 도구 없이 부수려면 꽤나 힘이 들었을 텐데 어떤 연장의 흔적 없이 오직 땅으로 내려쳐 부서진 투박한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연습실이 있는 건물 뒤 창고에서 버려진 일이었으니 반드시 오케스트라 단원 중 범인이 있다. 창고 앞에 있는 복도엔 CCTV가 없었기에 범인을 찾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돈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이유가 궁금했다. 물론 내가 친절한편도 아니고 살가운 성격도 아니다. 그렇다고 악기를 산산조각 낼 만큼의 악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주차를 하고 지하3층으로 내려가니 시끌벅적했다. 원래 이런 분위기였지만 일주일전 콘트라베이스가 부서지는 스캔들이 일어나고부터 더욱 산만해졌다. 또 누가 당할지 모르니 간수 잘해야 한다거나 누가 의심스럽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물론 그들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은 전혀 의심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오니 관심이 쏠렸다. 콘트라베이스는 어디서 샀는지 얼마 정도인지 범인은 누구 같은지 평소 나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인간들이 성난 벌 때처럼 시선을 내 얼굴에 꽂는다. 반복적인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라 그런지 유독 이런 스캔들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자기 일처럼 두려워하고 흥미로워 했다. 단원 내에 일은 더욱 심한 것 같았다.

대충 얼버무리고 겨우 연습을 시작했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그들이 원하는 범인을 의심해 주고 그들이 걱정하는 부분을 같이 걱정해주어 가볍게 넘겼다. 내 솔직한 의견을 말하면 바로 등 돌릴 사람들이다. 우리 오케스트라의 협력관계인 오케스트라의 삼십대 중반 성악가와 견습생으로 들어온 이십대 중반 남자, 우리 단원은 여자가 반 이상이기 때문에 그 둘은 인기대상이었다. 만약 내가 이 둘을 의심하고 있다고 하면 다들 이상한 눈초리를 꽂을게 분명했다. 그 둘을 알게 된지 육 개월이 넘었다. 성악가는 우리가 준비하는 연주에 테너가 필요할 때면 연습에 참여했고 견습생은 바이올린과 피아노 둘 중 하나 사람이 부족하게 되면 연습에 참여했다. 이번 연주는 부득이하게 둘 다 연습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오전 연습이 끝나고 점심시간에 우리 단원의 책임자인 예술 감독을 찾아갔다. 노크 후 들어가니 그는 내 얼굴을 보곤 올 줄 알았단 표정을 짓고 왔어? 라는 말과 함께 소파에 앉으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차를 내주며 그도 소파에 앉았다. 이번에 복도는 물론이고 창고나 연습실에도 CCTV를 설치할 예정이야 이번엔 손을 못 썼지만 이차 피해는 방지해야하니까 그렇게 말하곤 녹차를 마셨다. 제가 원하는 것은 CCTV를 다는 게 아니에요 감독님, 범인을 잡는 거지. 그는 얼굴을 살짝 구겼다. 전휘씨 억울한 건 나도 알겠는데 잡을 방법이 없어 그리고 따지고 보면 우리 단원 중에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어디 있어? 다 착하고 괜찮은 사람들인데. 나는 한숨을 겨우 삼키고 말을 이었다. 일을 키우면 곤란해서 덮으려는 건 아니고요? 감독의 여유 있던 표정이 사라지고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그는 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래서 전휘씨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제가 의심하는 사람은 두 명이에요. 그 사람들만 따로 불러서 면담 좀 해주세요. 누구? 테너 이상민씨하고 견습생 이목씨요. 감독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생사람 잡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은 우리 단원이랑 함께한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야. 무슨 근거로 의심하는 거야? 나는 녹차 한 모금 마셨다. 입술이 거칠어졌다.

 

난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점심시간이 끝나기 5분 전에 와서 낮은 음을 켜고 있었는데 견습생이 다가왔다. 한 번도 대화해 본 적 없는 남자가 말을 거니 당황했다. 잠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나오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연습 지휘자가 마음에 안 들었던 사람이라 순순히 따라 나왔다. 연습실 복도 끝 휴게실로 들어가니 그 남자가 휙 돌아섰다. 전휘씨 맞죠? 갑자기 이런 말하면 난처하겠지만 저 콘트라베이스 좀 알려주세요.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당황스럽기 보단 의아했다. 견습생이라지만 피아노와 바이올린 켜는 실력은 구멍을 메워줄 만한 실력이었다. 그 실력 다듬어 정식 단원이 되기에도 힘겨울 때 갑자기 콘트라베이스를 가르쳐 달라니 크고 둔해보여서 배우기 쉬어보이나? 내가 대답을 안 하자 그 남자가 말을 이었다. 사실 얼마 전에 기분전환 삼아 친구가 하는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갔거든요. 그런데 안 들리던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매력을 느꼈어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보다 10년은 어린 이 친구에게 굳이 힘든 길을 옹호해 주고 싶지 않았다. 저기 어려서 뭘 모르나 본데 그쪽이 지금 피아노나 바이올린 구멍 메우는 것도 대단한 거예요. 그리고 조금만 긴장 늦추면 자리 빼앗길 거 같은데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시죠? 여기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이 차고 넘쳐요. 예상 못한 답변이었는지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제 입장은 잘 알고. 아니, 알겠습니다. 부담스럽게 해서 죄송해요. 그러곤 뒤 돌아선다. 나는 그 뒷모습에 왜 안 되는지 더 설명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목씨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하죠. 어차피 지금은 개인 연습이니.

칙칙한 방음벽으로 도배되고 검은 커튼까지 쳐진 음울한 연습실을 빠져 나오니 햇빛이 유난히 밝게 느껴졌다. 나와 이목씨는 커피를 들고 정자에 앉았다.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말했다. 아직도 납득 못하고 있는 거 알아요. 왜 콘트라베이스를 배우지 말라고 하는지 세세히 알려드릴 테니 잘 들어요.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베이스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죠? 그것뿐이에요. 아니 사실 베이스의 소리도 따지고 보면 소음에 가까워요. 애초에 낮은 음만 가지고 있고 유명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도 조금만 방심하면 쉰 소리 나오는 악기라고요. 콘트라베이스만을 위한 악보는 있지만 독주회는 없어요. 누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어요. 애초에 그런 연주 자체를 할 일이 없겠지만. 사실 콘트라베이스는 돌연변이에요. 밑 둥은 바이올린처럼 생겼지만 둔하게 만들어서 이어붙인 거죠. 공연을 위해서 공연장으로 다른 사람보다 한 시간 일찍 가야 돼요. 알다시피 이 악기는 굉장히 예민하거든요. 먼저 가서 습기를 빼든 몸체를 녹이는 습기와 온도를 항상 맞춰 줘야 돼요. 당신의 중심이 콘트라베이스가 되어야 한다고요. 자잘한 이야기 같지만 콘트라베이스를 쥐는 순간 평생 스트레스가 될 거예요. 그리고 당신도 지금껏 봐와서 알겠지만 오케스트라는 계급사회의 집합소예요. 가장 권위 있고 높은 계급이 지휘자고 첫 주자에 제1 바이올린 제2 바이올린이 있고 그 다음 주자가 첼로, 플루,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에 이어서 금관 주자고 가장 마지막이 콘트라베이스와 팀파니예요. 심지어 보통 사람들은 댁처럼 콘트라베이스가 있는지도 몰라요. 그 누구도 아 콘트라베이스!’라고 알아채는 법이 없죠. 연주가 끝나고 박수세례를 받을 때는 베이스 때문에 일어서지도 못해요. 그 사람들 표정 하나하나 지휘자와 성악가를 쳐다보고 있죠. 그때마다 내가 박수를 받는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요. 오히려 의문이 들죠. ‘과연 이 박수소리가 나에게 치는 것이 맞나?, 내 악기소리를 듣고 감동을 받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관중들의 뜨거운 성화나 박수는 칠 할이 성악가나 지휘자 몫이에요. 나머지 삼 할을 연주자들이 나눠가지는 거예요. 과연 베이스 몫은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이런 전통은 몇 세기 전부터 시작 되서 지금 까지 이어져 온 거예요. 몇 백 년 전 연주자의 위치를 대대적으로 바꾼 적이 있어요. 하지만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그대로였죠. 예나 지금이나 베이스는 구석에 박혀있어야 하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겼죠. 당신이 이 악기를 다루게 되면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옵니다. 확신하죠. 그래도 배우고 싶으면 다른 사람 알아봐요. 전 못하겠으니.

나는 일부러 흥분한 했다. 감정적인 모습으로 내 진심을 알려주었다. 내가 말한 콘트라베이스를 배우면 안 되는 진실들은 내 감정을 건들지 못한다. 저런 사실에 흥분하기엔 나이도 먹었고 그만큼 단단해졌다. 앞날이 창창한 견습생에게 이런 식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귓등으로도 안 들을 것 같았다. 나는 연습실로 향하다 슬쩍 뒤돌아봤다. 분명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데 그의 시선과 나의 시선은 어긋나 있었다.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순간 그에게 다시 뛰어가 자격지심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오히려 인정하는 꼴이 될 것 같았다. 분명히 나는 내가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까지는 십 년이 걸렸지만 확실하게 자리 잡은 생각이다. 베이스기타 없는 밴드는 어디 있으며 콘트라베이스 없는 오케스트라는 어디에 존재할까 누가 봐도 분명하며 확실하다. 나는 내 자리에서 정상에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이 콘트라베이스를 쥐게 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밑바닥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뿌리부터 박고 시작해도 된다.

돌아오는 길에 문자가 왔지만 읽지 않았다.

 

연습실로 돌아오니 개인 연습이 끝나 쉬는 시간이 되어 한산했다. 그 중엔 내가 의심하고 있는 테너가 있었다. 그는 얼마 전부터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작업을 걸고 있다. 내가 우리 단원들의 암묵적인 리더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그랬다. 물론 경력으로 인해 인정받은 자리다. 나는 싹을 잘라버렸다. 그와 처음 연습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보였다. 그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가식이란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개의치 않고 말을 걸었다. 아마 내가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를 채고 더욱 그러는 것 같았다. 항상 쉬는 시간에 재빨리 자리를 피했었는데 계산 착오였다. 생각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는 성큼 성큼 내게 다가왔다. 땡땡이 치고 어디 갔던 거예요?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것이 혐오감을 주었다.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는 내말을 익숙한 듯이 흘려보내고 주머니에서 포장된 작은 상자를 건넸다. 오르골이에요. 아까 단원들한테 다 나눠드렸던 거니까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팬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것들이에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이 얼마나 두꺼워 이렇게까지 할까, 나 같으면 자존심 상해서 무시했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쓰레기통으로 다가가 보란 듯이 오르골을 버렸다. 속으론 너무하다 싶었지만 더 이상 그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내 행동을 보고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디까지 가나 해보자는 듯 했다. 그는 내 팔을 잡고 연습실을 빠져 나왔다.

수명이 다한 형광등을 갈지 않은 복도는 듬성듬성 어둠이 깔려있었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빛을 가리며 내게 그림자를 씌운다. 왜 이렇게 나오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다른 사람들은 나와 친해지려고 애를 쓰는데. 나는 팔을 뿌리쳤다. 나랑 친해지면 좋은 점이 많아요. 이런 후진 곳을 나와 우리 오케스트라에 들어올 수도 있는 거고 다른 유명한 지휘자나 성악가를 만날 수도 있어요. 제가 워낙 발이 넓어서요. 그럼 공연할 기회도 많아질 텐데 똑똑할 것 같은 사람이 의외로 둔하네요? 그는 말을 끝내면서 쓰레기통에서 다시 주은 오르골을 내 손에 쥐어줬다. 어느 새 태엽을 감았는지 오르골은 내 손에서 맑고 가벼운 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청아한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자 하려던 말이 턱 막혀 목을 조였다. 나는 뒤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거무튀튀한 복도를 나왔다. 곧 쉬는 시간이 끝나지만 여기에 더 있다간 숨을 못 쉴 것 같았다. 지하를 빠져나와 바람을 쐬고 싶었다. 흙속처럼 차갑고 텁텁하다. 오르골의 청아한 소리는 벽에 둔탁하게 튕기며 내 등을 떠밀었다.

 

지난 초여름 서울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다른 단원들보다 일찍 와 콘트라베이스의 온도를 맞추고 있었다. 손도 풀 겸 낮은 음을 켜기 위해 활을 꺼낼 때 견습생이 왔다. 그 날은 피아노 협주곡이 있는 날이었고 견습생이 그 피아노 연주를 맡아 손을 풀기 위해 빨리 왔나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베이스를 켜는 동안에 뒤에 앉아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지 뒤를 돌아 봤는데 그의 눈은 뭔가에 홀린 듯 눈빛을 띄고 있었다. 내가 처음 콘트라베이스의 소리를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나 역시 저런 눈빛이었을까 왠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었다. 밑으로 떨어질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마침 다른 단원들이 들어와 그는 짓고 있던 표정을 거두었다.

공연이 시작되었고 연주곡은 피아노 협주곡 D단조였다. 피아노의 독무대나 마찬가지기에 긴장했을 법 하지만 그는 청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얇은 미소를 띠울 뿐이었다. 그는 피아노에 앉아 이내 건반을 감싸듯 두드렸다. 연주를 하면서도 대기실에서 보았던 그의 표정이 떠올랐다. 왜 그렇게 쳐다봤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지만 모른 척 하고 싶었다. 그래도 계속 떠오르는 것을 왜일까 멍하니 연주하는 그를 쳐다보니 어느 샌가 피아노에서 거대한 줄기가 나왔다. 그 줄기는 계속 커졌고 천장에 닿을 높이에서 꽃잎을 열었다. 꽃은 반주에 맞게 경쾌한 리듬을 탔다. 다른 사람들은 저 꽃이 보이지 않는지 고개를 내려 둘러보자 바이올린에서도 줄기가 자라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첼로, 플루, 오보에, 클라리넷들도 줄기가 서로를 따라 잡으며 천장에 닿았다. 조명은 거대한 꽃잎들에 의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피아노 꽃에 달콤한 향기를 맡은 나비가 날아왔다. 그렇게 꽃과 나비들은 리듬을 타며 놀고 있는 와중에 내가 켜고 있는 콘트라베이스에서는 어떤 꽃도 자라지 않았다. 현을 켤 때마다 흙먼지가 올라올 뿐이었다. 나는 저 꽃잎 위에 올라타고 싶었다. 그래서 음을 높였다. 당연히 음을 높인다고 해도 나는 떠오르지 않았고 두터운 음은 오히려 내 발목으로 떨어졌다. 오기가 생겨 음을 더 높였다. 조금 더, 조금 더, 올리고 나서 더 이상 못 올릴 것 같을 때 주위를 보니 지휘자는 성난 벌같이 나를 쏘아 보고 있었다. 반대편과 중앙에 있는 단원들 역시 왼쪽 맨 끝에 있는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제 서야 내 팔목 위치를 깨닫고 원래음역대로 내렸다.

연주가 끝나고 대기실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이었다. 대기실에도 맨 뒤에 앉아 있는 나에게 예술 감독이 소리를 질렀다. 앞에 앉아 있던 단원들은 기회다 싶었는지 일제히 돌아봐 벌의 침을 쏘았다. 그들은 입은 열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말했다. ‘음을 왜 올린거야?’ 내가 왜 올린 것이지 알 수 없다. 상황을 풀기 위해선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내 입에선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낮은 음이잖아요.’ 그 소리를 듣곤 날 쳐다보지 않던 견습생과 테너가 단원들의 벌떼에 합류했다. 내 말을 부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침을 꽂았다. 그리고 비웃음을 던졌다.

 

아까 견습생과 있었던 정자에 앉았다. 도심 속에 위치한 연습실이지만 지하에서 반나절을 보내는 나에게 닿는 공기는 시선했다. 핸드폰을 꺼내 아까 어머니의 문자를 확인했다. 지나가는 길에 들리겠다는 내용이다. 종종 어머니는 도시락을 싸들고 연습실로 찾아왔다. 그 때마다 귀찮았다. 최근엔 여러 일이 섞이면서 더 신경 쓰였다. 답장은 하지 않고 바흐 9중주곡 칸타타 152번을 틀었다. 소프라노와 콘트라베이스가 꼭 필요한 유일한 가곡 두 개 중 하나다. 모든 것을 품는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은 이 곡에서 빛을 발한다. 푹신한 구름 같은 저음은 날 태우고 위로 올라간다. 베이스 G현을 켤 때 어머니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왜 답장을 안 해? 어머니는 한 손에 도시락을 들고 내 눈앞에 있었다. 괜히 엄한대서 찾다가 시간 잡아먹었네, 근데 우리 딸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왜 그래? 오늘 따라 어머니가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도시락을 받았다. 밥 때는 다 지났는데 도시락은 왜 이리 많이 싸왔어요? 너 만 입이니? 가서 단원들하고 후식으로 먹어. 더 말해봤자 이야기만 길어져 알겠다고 했다.

어머니를 집에 보내고 연습실로 가기위해 복도를 걷는 중 견습생이 다가왔다. 얼굴을 보니 뭔가 따지러오는 표정이다. 더 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나보다 큰 키를 가진 견습생 역시 후광으로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아까 이상민씨하고 대화하는 거 다 들었어요. 절 가르치지 않는 이유가 자격지심 때문이에요? 나는 도시락을 뒤로 숨겼다. 그런 것은 자잘한 문제에요. 제가 아까 한 말이 그렇게 들렸다면 잘못 이해하셨어요. 그리고 기분 나쁘셨으면 미안해요. 나는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 재빨리 자리를 떴다. 그는 더 따지려다 내 태도를 보곤 멈칫했다. 이곳은 흙먼지가 너무 많았다.

모든 연습이 끝나고 단원들은 전부 퇴근했다. 나는 빼먹은 연습을 채우기 위해 남아있기로 했고 바람 쐴 겸 단원들을 보낸 후 복도를 걷고 있었다. 복도 끝 예술 감독 실에서 감독님이 나왔다. 그 뒤로 테너가 나오고 그 뒤로 손님으로 보이는 두 사람, 자세히 보니 저명한 지휘자 한 분과 소프라노 한 분이 나왔다. 감독은 다가오는 나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소개했다. 그들은 예의치레 인사한 후 테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3개월 후 뵙는 걸로 알겠습니다. 이상민씨 머리 희끗한 지휘자는 손을 내밀며 웃었다. 테너는 웃음으로 답했다. 나라면 절대 지을 수 없는 다소 건방진 미소였다. 예술 감독은 그들을 밖까지 배웅하러 나가고 테너는 한숨을 쉬며 뒤돌아섰다.

가곡으로 손을 풀고 있자니 얼마 안돼서 테너가 들어왔다. 그리곤 보란 듯 앞자리에 앉아버렸다. 나는 굳이 신경 쓰지 않고 연습에 전념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테너는 끝까지 나가지 않고 내 연습을 듣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의 존재가 불편한 것은 분명했다. 집에선 민원이 들어와 제대로 연습할 수가 없다. 베이스는 낮은 음을 지녔고 내 집 반 지하에는 방음부스가 설치되 있음에도 그랬다. 콘트라베이스는 관통력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무시하고 연습하려고 했지만 그와 같이 있는 것은 한 시간이 한계였다. 베이스를 케이스에 넣고 집에 갈 채비를 하자 그가 내게 다가왔다. 부탁할게요. 우리 서로 신경 쓰게 하지 말죠? 그가 입을 떼기 전에 먼저 말했다. 그는 다시 가증스런 미소를 짓는다. 하나만 물어 볼게요. 그렇게 저를 싫어하는 이유가 뭐예요? 아니, 이 질문은 됐어요. 정말 궁금한 것이 있어요. 이제 와서 묻는 것은 좀 그렇지만 낮지 않아서 음을 높였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요? 나는 도시락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다. 왜 그 때 이야기를 꺼낼까. 흥분해버린 난 박차고 자리에 일어났다. 그는 왼손을 들어보이곤 계속 말했다. 허락된 자리는 단원들의 리더인가요? 나는 있는 힘껏 봉투를 쥐었다. 화분이 없는데 어떻게 꽃이 있겠어요. 그는 얘기를 듣더니 더욱 깊은 미소를 지었다. 그 입 꼬리는 내 살을 베어내는 듯 날카로웠다. 그것은 받쳐주는 사람들의 변명이 아닐까요? 위로 올라 갈 수 없으니 자신의 위치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리고 저는 당신이 꽃으로서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 겁니다. 저 뒤에 있는 견습생에겐 당신이 꽃 아닌가요? 그 남자가 눈짓한 곳을 보니 어느새 견습생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다시 테너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애초에 나를 꽃이라고 생각하고 다가온 것이었다. 화분은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들고 있던 도시락을 테너에게 던져버렸다. 높게 쌓인 도시락은 김밥과 참외와 사과를 내뱉으며 흩어졌다. 플라스틱의 가벼운 소음은 연습실을 누비다 잦아졌다. 그는 옷을 몇 번 털고 나가버렸다.

 

 

전휘씨 미안하지만 그건 너무 심증이야. 서로 감정 상할 만한 일인 것은 알겠는데 그런 일로 콘트라베이스를 박살냈다고? 해석이 비약적인 것 같은데? 전휘씨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둘은 아니야 내 감독자리 걸고 맹세할게. 알았으니까 그냥 면담이나 해주세요. 이 둘 중 한명이 확실하니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그 때 급하게 뛰는 소리가 감독실로 가까워졌다. 이곳에서 저렇게 뛸 이유가 없는데 점점 커지는 발소리는 내 심장을 밟는 듯 커져갔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문 열고 들어온 것은 우리 단원 중 한명이었다. 전휘씨 창고에 전휘씨 악기가 부서져 있어. 그녀가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어떤 사람도 저런 장난을 칠 리가 없으니 내 콘트라베이스가 부서진 것은 진짜다. 이미 한 번 조각을 내놓고 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바로 창고로 갔다. 단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하지만 들어가진 않고 문밖에서 구경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자 들어가서 확인해보하는 듯 자리를 비켜줬다. 그 중엔 테너도 있었고 견습생도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베이스는 투박하게 조각나 있었다. 그것도 보란 듯이 문을 열자마자 보이도록 놓여있었다. 창고는 형광등이 고장 나 켜지지 않았고 복도의 흐릿한 빛을 받아낼 뿐이었다. 그 아슬 한 빛이 콘트라베이스의 깨진 윤곽을 겨우 부여잡고 있었다. 열 댓 명이 있는 대도 불구하고 창고 주의는 고요했다. 조각을 하나 들어 올리자 나무의 가벼운 소리가 울렸다. 콘트라베이스가 이렇게 가벼웠나, 나는 창고 밖으로 나와 테너와 견습생의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그들은 어떤 표정도 보이지 않고 나를 봤다.

너희지? 너희 둘 중에 한명이 그런 거 맞잖아.’

내 목소리는 복도 끝을 찍고 다시 돌아 왔다. 아무도 대답 없이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나는 바로 그들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단원들이 몸 바쳐 말렸다.

너희가 한 짓 맞잖아!’

그들은 어떤 동요 없이 달려드려는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내 악기를 부수는 이유가 뭘까 나는 콘트라베이스를 켜는 사람일 뿐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단원일 뿐인데

왜 하필 나야! 내 악기만 부수는 이유가 뭐야!’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텁텁한 공기와 흙먼지는 더 이상 마시기 싫었다. 집으로 가서 콘트라베이스를 켜고 싶다. 그들에게 달려들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콘트라베이스 조각을 박스에 넣고 연습실 건물 뒤 화단으로 갔다.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것도 심어진 것이 없는 볼품없는 화단이다. 그 곳엔 이전에 깨진 콘트라베이스 조각이 있었다. 이곳을 같은 이유로 다시 오게 됐다. 나는 그 위에 박스의 내용물을 쏟아냈다. 좁은 화단은 그 조각들을 다 삼키지 못하고 뱉어냈다. 나는 화단에서 떨어진 조각을 주워 위에 올려놓았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나무 조각은 이미 화단과 한 몸이 된 듯 했다.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화단에 베이스 조각은 잘 어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연결 음이 세 번 울리고 어머니가 받는다.

어 엄마, 도시락 잘 먹었다고, . 다른 사람들도 잘 먹었다고 전해 달래 응끊을게.

 

, 잠시 만요. 지금 두 옥타브 낮은 시에서 살짝 더 내리고 있어요. 기다려보세요. 스윽. 들었어요? 아까 들려드렸던 것보다 더 낮죠? 근데 정말 볼품없는 소리네요. 아무리 예리하게 키려고 해도 예쁜 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이제 이 짓은 그만둬야겠어요. 역시 콘트라베이스는 두껍고 웅장한 소리가 가장 어울리죠. 아 범인은 잡았냐고요? 못 잡았어요. 누가 자백하겠어요. 콘트라베이스 두 개 값이 얼만데요. 그 둘은 그 일 이후로 더 이상 말을 걸지 않더군요. 어찌 보면 잘된 일이에요. 베이스 두 개를 주고 그 남자들 신경 끄게 했으면 나름 만족스런 결과에요. 그런데 오르골을 가져와 버렸네요. 다시 주기도 그러니 그냥 갖고 있기로 했어요. 들어보자고요? 좋아요. . 엘리제를 위하여가 나오네요. 어렸을 때 참 좋아했던 클래식이에요.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근데 계속 듣고 있을 건가요? 아 그래요. 마음대로 하세요. 전 콘트라베이스나 켜야겠어요. 여긴 방음부스도 아니고 야밤이지만, 제가 말했었나요? 이 악기는 소리가 크지 않지만 울림이 좋아요. 다시 말하자면 관통력이 좋죠. 잘만 하면 이 건물은 다 울릴 걸요. 반 지하에서 켜면 더욱 그렇겠죠. 한 번 켜보겠습니다. 녹음기는 잠시만 꺼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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