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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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예림
  • 승인 2019.04.16 10:51
  • 조회수 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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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재광 목사(기독교학과)
계재광 목사(기독교학과)
계재광 목사(기독교학과)

 

 3, 대학생에게는 새로운 마음과 다짐으로 시작한 새해의 본격적인 걸음을 걷게 되는 달이다. 신입생은 새로운 대학생활에 대한 설렘으로 공부와 동아리활동들을 생각하게 되고, 재학생은 미래와 진학을 위해 공부, 취업, 아르바이트도 계획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3월에는 여러 많은 친구와 선·후배들을 만나게 되고 관계를 맺게 된다. 인간적 관계로 만나든, 학업으로 만나든지 간에 대학에서의 인간관계가 평생에 남을 귀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나이 오십이 되어 나는 과연 좋은 관계를 맺어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많지는 않아도 마음을 나눌 친구들이 더러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신입생들과 상담시간이 되어 상담을 하고 몇 명이서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그 자리에 오기로 했다가 못 온 친구에게 연락을 하여 함께 식사를 했다. 어떻게 해서든 식사자리라도 오게 하려고 전화하는 학생을 보면서 서로가 좋은 친구들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좋은 친구, 좋은 인간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일단 상대방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하다보면 상대방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진다. 하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 하는 것은 이내 들키고 만다. 정말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친구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다 보면 어느새 깊은 우정의 관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가장 어렵고 힘든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경청의 어근을 살펴볼 때, ‘듣는다라는 말과 순종한다라는 말의 어근이 같다. 라틴어로 순종한다라는 단어는 듣는다라는 단어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듣는 감각의 행위를 넘어서, 생각과 마음까지도 들여야 하는 의지의 행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경청은 의지적 순종이다. 태어난 아기는 말을 할 때 까지 계속해서 듣는다. 들어야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들음의 대가를 뽑으라면 당연히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예수에게서 들음, 경청을 배울 수 있다. 예수님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폭 넓게 들으실 뿐 아니라 깊이 있게 들으시는 분이다. 빈민이나, 병자, 천민, 외국인, 죄인의 말에 귀 기울이셨다.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서 조차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맹인 바디매오의 말을 들으셨고, 귀신들린 딸의 치료를 간청하는 여인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심지어 미세하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한 여인에게도 그분은 귀를 기울여 만나주셨다. 야곱의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도 들으셨다. 아니, 들으실 뿐 아니라 상대방의 근원적 필요를 간파하셔서 고쳐주시고, 평안을 선물로 주셨다.

 바쁜 세상에서 멈추어 서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매우 수고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고 어쩌면 낭비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사방이 소음천지인 세상에서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은 외로움으로 인해 힘들어 하고 있다.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는 외로움이 서구세계의 나병이라며 캘커타(Calcutta)의 빈곤보다 더 참담하다고 했다. 이럴 때 일수록 내 주위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둘러보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들어야 할 때 오히려 말만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을 열고 부드럽고 따뜻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적극적 공감과 환대의 행위인 경청으로 자신을 내어주면 좋겠다. 꽃이 피는 교정을 걸으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학생들을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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