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 : 새뜻한 하루를 바라며
영화 '가버나움' : 새뜻한 하루를 바라며
  • 서정이
  • 승인 2019.10.14 11:50
  • 조회수 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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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은 작고 어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에게 세상은 호기심 투성이인 놀이터다. 작은 순간마저도 배움이 담겨있고 그 순간순간에 즐거움이 가득 담긴 그런 시절. 그러나 즐거움이라는 한낱 사사로운 감정에 빠질 수 없는 아이도 있다. 바로 여기, 세상을 증오하고 그런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원망하는 작지만 강한 소년이 있다.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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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남자아이가 수갑이 채워진 채 등장해 이내 재판장에 출석한다. 그 아이는 자신이 사람을 찔러서 교도소에 수감 중이라고 말하며 본인이 이 재판장에 와 있는 이유를 말한다.

 

“제가 부모를 고소했어요.”

“왜 부모를 고소했죠?”

“나를 태어나게 해서요.”

출처-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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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를 마치고 학교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네 친구들과 달리 ‘자인’은 동네 슈퍼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집에 바래다준 선생님과 하교하는 또래 친구들의 모습을 자인은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자인의 집은 대가족으로, 부모님과 아래 많은 동생들을 두고 있다. 직접 만든 과일 주스를 팔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집안 환경 상, 자인이 학교를 다니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내비치자 아버지는 돈이 드는 것을 이유로 반대한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는 다른 집의 아이가 먹을 것과 옷가지들을 받아오는 것을 봤던 어머니는 분명 가계에 보탬이 될 거라며 자인을 학교로 보내자고 설득한다. 자인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은 오로지 집안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자인이 일하는 슈퍼의 사장 ‘아사드’는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를 마음에 들어한다. 사하르는 초경을 시작하게 되고 어엿한 여인이 된 여동생을 부모님이 아사드에게 보내버릴 것을 예상한 자인은 여동생의 피 묻은 바지를 직접 세탁하고 생리대를 훔치는 등 여동생의 초경을 비밀로 숨겨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사드와 키 큰 어른들이 집을 찾아온다. 자인은 어머니에게 저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 따져 묻지만 어머니는 단지 집세 얘기를 하러 온 것이라며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다. 얼굴에 화장을 하고 생전 입지 않던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보며 자인은 마녀 같다며 오히려 사하르에게 화를 낸다.

다음날 자인은 사하르와 자신의 옷가지를 챙기며 집을 떠날 준비를 한다. 슈퍼에서 물건을 훔치고 도망갈 버스를 알아본 후 사하르를 데리러 간 집에는 엄마가 사하르의 짐을 챙겨 아사드에게 보내려 하고 있었다. 사하르가 엄마에게 자신을 보내지 말라며 우는 모습을 보며 자인은 화를 내며 죽기 살기로 엄마를 막아보지만 결국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사하르는 떠나버린다. 분노와 슬픔을 참지 못한 자인은 어머니에게 이제 만족하느냐며 집을 뛰쳐나온다.

 

출처-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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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나온 집을 떠나 자인은 우연히 놀이공원으로 향하게 됐고 그곳에서 ‘라힐’을 만나게 된다. 라힐은 놀이공원의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이었는데 자인에게 먹을 것을 내주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자신의 뒤를 자인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라힐은 자인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라힐도 누군가를 도와줄 처지는 아니었다. 그녀는 불법체류자의 신분이었으며 설상가상으로 갓난아기 ‘요나스’를 키우는 미혼모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인에게 잠을 잘 수 있는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해준다. 그동안 요나스를 직장에 몰래 데려갔었던 그녀는 자인에게 아이를 맡기고 맘 편히 직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평소처럼 라힐이 출근한 어느 날 밤, 라힐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자인은 날이 밝자마자 밖으로 나가 라힐의 소식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간다. 라힐과 같은 불법체류자들에게 가짜 신분을 제공하던 사람이 자인에게 요나스를 맡기라고 꼬드기지만 자인은 넘어가지 않는다. 자인은 본인도 충분히 어린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요나스를 보살핀다.

 

출처-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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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자인과 같이 시장에서 물건 판매를 하던 ‘메이소운’으로부터 스웨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곳은 너무나 살기 좋아서 아이들이 병에 걸려야만 죽는다고 했다. 그런 곳이 있는지 처음 알게 된 자인은 스웨덴에 가고자 마음먹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출생증명서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자인은 요나스를 잠시 맡기고 집으로 출생증명서를 찾으러 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여동생 사하르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사하르는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임신이 되어 하혈을 하고 말았는데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어느 병원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자인은 그 즉시 칼을 들고 아사드를 찾아가 그를 찌르고 만다. 그렇게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 자인은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면회를 온 엄마가 하는 말이 다름 아닌 엄마의 임신 소식이라니. 자인은 분노와 충격에 휩싸였다.

 

“엄만 감정이 없나 봐요. 엄마의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

 

 그렇게 엄마를 돌려보내고 난 후 부모의 무책임함에 참을 수 없게 된 자인은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부모를 고소한다. 다시 영화 초반 재판장의 장면으로 돌아가 자인은 자신의 생각을 한 글자 한 글자 명확하게 판사에게 전달한다.

 

“부모에게 원하는 게 있나요?”

“애를 그만 낳게 해 주세요.”

 

 자인에게 세상은 아무리 발버둥을 치며 살아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일 뿐이다. 자인은 이런 자신과 같은 아이가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방송을 통해 부모를 고소하던 순간 자인은 이렇게 말했다.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었어요.”

 

 자인의 바람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존중을, 사랑을 받는 것이었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라면 쉽게 받는 애정과 사랑의 손길을 말이다. 영화는 이렇게 마무리되지만 더 놀라운 것이 아직 남아있다. <가버나움> 속 모든 인물이 전문 연기자가 아닌 해당 역할과 비슷한 환경과 경험을 가진 실제 인물들로 캐스팅됐다는 점이다.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는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던 시리아 난민 소년이었으며,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로우’는 실제 불법 체류자였다.

 영화 가버나움의 주제는 다소 무거워 보이지만 실제 현실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나라와 자신의 보금자리를 잃은 난민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을 도울 명확한 방법이 아직까진 없기 때문이다. 자인이 큰 걸 바란 것이 아닌 단지 사랑과 존중을 원한 것처럼 자인과 같은 많은 이들이 남들은 이미 다 갖고 있는 평범함을 원한다. 그들은 평범함을 넘어서 그 이상의 것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자인이 평범한 하루를 넘어 새뜻한 하루를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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