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의 봄으로
100년 전의 봄으로
  • 박혜리
  • 승인 2019.10.04 16:33
  • 조회수 5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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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3.1운동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태극기로 물든 거리? 자주 국가임을 선포한 독립선언서?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게 끝까지 저항한 유관순 열사? 아마 다양한 사건과 인물이 떠오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삼월의 첫날.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날의 큰 함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민족에게 지난 100년 중 전반기는 국치의 아픔 속에서 선열들의 국권 회복 투쟁기이고, 후반기는 민주 공화제를 발전시키는 국가 건설의 시기였다. 그렇다면 현재를 맞이하기까지 무엇이 달라져 있을지 3월 1일, 그 역사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 보자.

같은 뜻, 하나의 목소리

3월 1일 서울의 만세 시위는 이른 새벽, 학생들이 시내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시작됐다. 새벽부터 학교를 빠져나온 학생들은 탑골공원에 집결했고,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 모여 오후 2시 독립선언식을 가졌다. 같은 시각 수천 명의 국민들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시작했다. 도시에서는 종교인과 학생들이 만세 시위에 불을 붙였고, 학생들은 시위를 모의하고 주도하는 한편 등교를 거부하는 동맹휴학을 전개했다. 학생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노인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시위를 주도했고 동참했다. 이날 6개 도시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나면서 이것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매일같이 50~60여 회의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런 폭발적인 자발성으로 3.1운동이 전국에서 매일같이 일어났고, 결국 3.1운동은 일제가 통치 방식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꾸는 발판이 되었다.

운동과 여성

3.1운동은 여성들이 최초로 역사 현장에서 주체적으로 등장했다. 당시 검거된 사람 중에 학생과 교원이 2355명인데, 그중 여교사와 여학생이 218명이었다. 1919년 당시 여자들의 취학률이 남자들의 100분의 1 수준도 안 되었던 것에 비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다. 시대적 사회흐름으로 인해 집안에서 순종의 미덕만을 강요받던 여성들이 봉건 의식에서 벗어나 독립운동 일선과 사회활동 전면에 나서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3.1운동. 하지만 대부분이 여성독립운동가를 떠올리면 유관순 열사를 제외하고 다섯손가락을 채 접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른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대표적인 이유로는 대부분의 여성 운동가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살림을 돌보거나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고 또는 독립운동가들의 군수품을 운반하는 ‘간접 지원의 임무를 주로 맡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남성 위주로 기록된 독립운동사에서 여성의 역할은 저평가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처 모르고 지나갔던 여성 운동가들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김마리아>_여성들의 만세 시위운동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한 김마리아 선생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성취될 때까지 우리 자신의 다리로 서야 하고 우리 자신의 투지로 싸워야 합니다.”

일본에서 2.8 독립선언에 참가하고 국내에서는 여성들의 3.1운동 참여를 독려했던 김마리아 선생은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학생 독립운동의 배후로 지목되어 수감돼 모진 고문을 겪지만 출감 후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활동을 통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는 등 끊임없는 독립운동을 펼쳤다.

<박자혜>_간우회를 설립한 박자혜 선생

“더 이상 일본인들을 위해 근무할 수 없다”

3.1운동 당시 총독부의원에서 일하던 박자혜 선생은 간우회를 조직, 동료 간호부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참여했다. 신채호 선생과 결혼 후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의거를 돕는 등 독립운동을 든든하게 지원했다.

<권기옥>_조선총독부를 폭격하기 위해 비행사가 되고자 했던 권기옥 선생

“비행기를 타는 공부를 하여 일본으로 폭탄을 안고 날아가리라”

3.1운동 당시,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어나가 만세 운동을 펼쳤던 19살의 권기옥 선생. 이후 조선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되었으며 중국 공군의 한국인 비행사를 활용하여 광복군 비행대 편성 및 작전계획을 구상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정부와 사회 각계각층에서 여성 운동가를 재조명하고 있다. 정부와 문화계 곳곳에서도 여성독립운동가를 주인공으로한 영화나 다양한 공연, 전시를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또한 많은 기업에서도 100주년을 맞이해 애국 마케팅에 나섰다. ‘GS25’는 여성 독립운동가 51인의 스티커를 제작해 도시락 전 상품 20종에 부착했다. 판매되는 도시락 전 상품, 원두커피 컵, 자체브랜드 생수 2종에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7인의 여성독립운동가 관련 키워드를 넣어 판매하며 3월 한 달간 ‘유관순 열사의 열정과 용기를 응원합니다’라는 마케팅을 진행했다. 여성가족부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힘썼지만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노력과 활동을 기리기 위한 ‘여성독립운동가 달력’을 제작했다. 달력에는 독립을 위해 세운 공로에 따라 훈장이나 포상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주요 활동과 출생, 사망 연도 등이 매일 1명씩 소개됐다.

민족 최대의 저항운동이자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3.1운동.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우리의 가슴속에 새겨,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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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지금의 3월 1일은 어떠한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전국 곳곳에서는 나라에서 주최한 기념행사와 문화예술 공연 등 크고 작은 행사가 진행되었다. 3.1만세운동을 재현한 행사부터 독립선언문 낭독, 독립운동가들과 해방이 되기까지의 시대상이 담겨있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이 개최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100주년 기념을 위한 굿즈 상품들이 많이 기획됐다.

[3.1운동은 합창이다]

서울시에서 2월 28일부터 약 9일간 진행된 행사다. 삼일절 오후, 서울 덕수궁 앞에서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기 위한 특별한 만세 행진이 펼쳐졌다. 대통령과 정치인, 수많은 시민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행사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다시 찾은 주권을 단절 없이 계승해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한 손에 태극기를 꼭 쥔 채 앞으로 나아가는 시민들의 표정에는 100년 전 독립 투사들의 결연함이 엿보였다. 행진이 끝난 뒤에는 서울 시청 광장에서 3천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하는 ‘100년 대합창’ 행사가 이어져 100년 전 그날의 외침을 되살렸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세대와 성별을 초월해 한마음으로 함께 3.1절 노래와 애국가 등을 따라 부르며 뜨거웠던 만세 운동의 현장을 재현했다.

[독립의 횃불 전국 릴레이]

국가보훈처에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해 ‘독립의 횃불’ 전국 릴레이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기억하는 100년, 기약하는 100년이라는 주제로 전 국민이 마음을 이어가며 함께 참여하는 축제로 운영되었다. 100년 전 3.1운동을 시작으로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기까지의 여정 42일을 기억하고, 앞으로 새롭게 펼쳐질 대한민국 100년을 기약하는 행사로 3월 1일부터 4월 11일까지 미리 선정된 2019명의 봉송 주자가 만세운동이 열렸던 전국 22개 지역을 릴레이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

서울시합창단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창작 초연작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를 3월 2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였다. 100년 전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시민들의 자주독립 함성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유관순 열사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시민들의 만세운동과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독립운동을 오페라 칸타타 장르에 담았다.

이번 공연은 총과 칼을 앞세운 무자비함도 한 소녀의 독립 의지를 이겨내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무게감 있게 보여준다.

그날의 봄

우리는 누구의 힘으로 주권을 갖고 국가의 주인 역할을 할 수 있었나. 그들의 독립을 위한 노력과 숭고한 피는 지금의 우리에게 진하게 물들어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있게 국민이 주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100년 전 봄은 지금의 우리에게 따뜻한 봄이 되게 해준 날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새로운 100년을 함께 준비해 나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 이 나라의 주인이니까.

​​“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 선언을 세계 온 나라에게알리어 인류 평등의 크고 바른 도리를 분명히 하며, 이것을 후손들에게 깨우쳐 우리 민족이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길이 지녀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독립선언문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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