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이 빙판위에 무너진 이유
소녀들이 빙판위에 무너진 이유
  • 박은주
  • 승인 2019.10.04 16:33
  • 조회수 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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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 출신의 유명 운동선수가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세간에 알렸다. 이후로 자신도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선수들이 체육계 곳곳에서 등장했다. 작년 문화계 성폭력 사건에 이어서 체육계마저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전부터 체육계에서 성폭행이 난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포츠계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사람들의 궁금증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선수들이 침묵을 유지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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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지금까지 난무했던 체육계 성폭행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로부터 폭력 및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심석희 선수는 지난해 1217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조재범 전 코치의 상습상해 및 재물손괴사건 항소심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당일 전 코치에 대한 고소장을 추가 제출했다. 이 사건이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게 한 점은 2014년 당시 만 17살의 고등학생이었던 선수를 미성년자 시절부터 4년 동안 수차례 성폭행 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선수는 상습 폭행과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당했고 선수 생활을 지속하고 싶으면 내 말을 들으라는 식의 협박 때문에 지금까지 피해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고 전했다. 심석희 선수의 폭로에 국민들은 엄정한 수사와 코치에게 엄격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을 청와대 게시판에 꾸준히 올리며 분노했다. 이후로 한 유도선수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고교 재학 시절 지도자로부터 상습적인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고 밝히며 해당 코치를 고소했다. 이미 지난해 3월 코치를 고소했지만 수사가 지지부진해 외롭게 버티다 심석희 선수의 고백에 용기를 내게 됐고, 후배 선수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실명까지 공개한다며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

 2014년 한 대학의 빙상 코치는 미성년자였던 선수를 강간하고 임신을 우려해 배를 폭행해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수치심과 공포심에 시달리던 선수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대한 볼링협회 소속의 한 고등학교 코치는 전지훈련과 대회 기간 도중 선수를 상대로 성폭력을 행사했다. 이렇게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를 폭행한 사건도 있지만, 선배가 후배를 혹은 동료 간 성폭행한 사건도 비일비재했다. 스키협회 소속 국가대표팀 선수 2명은 국제 대회 도중 술을 마신 후 동료를 성폭행하고 추행해 영구 제명됐다. 이렇듯 체육계 곳곳에 성폭행 사건이 난무했는데도 지금에서야 이슈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체육계는 지도자가 선수를 발탁해 키우는 도제식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각 종목마다 엄격한 위계와 학연, 지연 등이 촘촘히 얽힌 폐쇄성을 갖고 있다. 이런 틀 안에서 성적 지상주의와 코치라는 절대 권한, 폭행과 같은 범죄에 대한 비정상적인 암묵을 낳았으며, 성적 약자인 여자 선수들을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다.

SBS 모닝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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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처벌? 솜방망이 처벌인 현실

 대한 체육회가 제시한 대한 체육회 회원 종목 단체 징계 현황 자료에는 폭력, 성폭력, 폭언으로 징계를 한 사건이 124건에 이른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횟수가 최근 5년 사이에 벌어진 수치라는 것이다. 124건 중 16건이 성폭력이었으며 심지어 2건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사건이었다. 그동안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관계자를 처벌하는 등의 개선을 수차례 다짐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쳤다. 대한 수영연맹의 전 국가대표 코치는 2015년 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자격정지 6개월 징계를 받았으나 이후 지도자 위원으로 임명됐다.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처럼 징계 중 복직이나 재취업한 사례가 860건 중 24건에 이르며 징계 후 복직, 재취업한 사례는 299건으로 집계됐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처벌강화를 요구하는 여론이 커져갔다.

 

징역 360?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어떻게 처벌할까? 미국 미시간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 체조팀과 체조 국가대표팀 주치의였던 나사르는 30년 동안 300여명의 여자 선수들을 성폭행했다. 여기에는 미성년자도 포함되어 있어 1급 성범죄 7건이 인정되어 미국 연방법원은 피의자에게 360년 형을 선고했다. 사실상 무기징역형으로 가해자를 사회에서 격리시켰다. 또한 오랫동안 범죄를 저질러온 폭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국 체조협회와 미국 올림픽위원회 등 관련 기관 역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피의자가 의사로 일하고 있던 미시간주립대에서는 피해 학생들을 구제하지 못한 책임을 이유로 300명이 넘는 피해자들에게 5억 달러를 배상했다. 그리고 대학 총장이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도 했다. 다른 사례로는 아프가니스탄 여자축구대표팀 선수이자 매니저였던 칼리다 포팔은 지난해 11월 말 아프가니스탄 축구협회 간부들과 트레이너 등이 선수들에게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폭로했다. 이에 아프가니스탄 법무부는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축구연맹 회장 등 6명의 자격을 영구 정지했다. 이렇게 해외 처벌사례와 우리나라 처벌을 비교하며 체육계 성폭력 징계는 확대되어야 한다는 여론의 소리가 더욱 들끓고 있다.

 

정부의 대책과 방안

이전까지의 처벌은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며 처벌을 강화를 요구하는 청원이 잇따른 시점에서 과연 정부는 어떤 대응책을 내놓았을까?

 먼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 성폭력 가해자가 체육 관련 단체에서 종사하는 것을 금지했다. 현재 대한체육회 및 대한장애인 체육회 규정에 따르면 강간, 유사 강간 및 준하는 성폭력의 경우에 영구제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영구제명 조치 대상이 되는 성폭력의 범위를 중대한 성추행의 경우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이와 더불어 성폭력 관련 징계자는 국내외 체육관련 단체에서 종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며 체육 단체 간 성폭력 징계 정보 공유 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체육 분야 성폭력 등 인권침해에 대해 장기적인 체육계 쇄신방안 등 근본 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체육계에 대한 재발 방지 컨설팅을 실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체육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체육 분야 폭력 예방 교육 전문 강사를 양성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체육 단체, 협회, 구단 등의 관계자나 성폭력 사건을 은폐 축소하는 경우 최대 징역형까지 형사 처벌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학교운동부 운영 점검 및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협력해 학교운동부 지도자 비위행위에 대한 징계 절차 개선, 자격 관리 시스템 등을 만들기로 했다. 경찰청은 여성 대상 범죄 특별수사팀 등을 중심으로 사이버와 법률전문가 등을 보강한 전문수사팀을 구성해 엄정하게 수사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신고센터에 접수된 사건을 해바라기센터 등 여성가족부 피해자 지원시설에서 법률, 상담, 심리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연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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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앞으로는

 이는 빙상 체육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협회와 연맹의 무능과 비리, 무책임함과 파벌싸움에서 파생된 각종 문제는 야구, 축구 등 인기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사건이 발생하면 잠시 관심을 끌었다가 이내 그 관심이 사그라지면 또 불거지기를 반복하는 패턴도 다르지 않다. 결국 대한민국 스포츠 시스템 전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진상 규명과 함께 가해자에 대한 단죄다. 사실을 은폐, 축소한 시도가 있었다면 이에 대한 조사와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또한, 성과주의에만 집착하는 스포츠 시스템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미성년자 때부터 인권을 유린당하고 가족들에게까지 숨긴 채 외로움과 상처들을 참아온 선수들의 아픔을 마주함으로써 두 번 다시 이런 가혹한 불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로서 반드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기를 바라면서 용기 있게 고백해준 선수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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