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의 표정
글자의 표정
  • 정윤재
  • 승인 2019.11.1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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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의 표정

정기자 정윤재(jyj99128@naver.com)

 

 현대에 들어서면서 커뮤니케이션은 말보다 글, 수기보단 문서로 이루어진다. 펜과 연필은 점점 자신들의 설자리를 잃고 그 자리를 키보드가 대신하는 디지털 문서화시대이다. 수기로 작성한 문서를 보면 작성자가 의도했든 안 했든 그 사람의 성격이 묻어난다. 잘 사용한 폰트는 문서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문서의 외관을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겸한다. 단지 모양만 바뀔 뿐인데 글이 더 믿음직스럽게 변한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글자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지금부터 알아보자.

 

당신은 하루에 몇 개의 폰트를 마주하십니까?

 “그깟 글자 모양이 뭐가 대수라고 유난이지?”, “폰트에 신경 쓸 시간에 글 내용을 한 번 더 볼 일이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폰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타이핑프로그램에 대표 폰트로 문서를 작성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폰트의 중요성을 설명할 방법이 있다.

 평일 아침, 당신은 등교나 출근을 준비하면서 과연 몇 개의 서체를 접하게 될까? 일단 아침에 알람과 함께 휴대전화로 시간과 메일 등을 확인한다. 눈을 비비며 욕실로 들어서 치약, 세면용품을 사용하고, 식탁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먹으며 TV로 켜서 뉴스를 확인한다. 식사를 마치고 책상으로 돌아가 여러 가지 놓여있는 물건들을 목격하고 외출할 때 필요한 전공서적이나 준비물을 가방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집을 나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층 수를 확인한다. 40분의 과정에서 당신은 몇 개의 서체를 목격하게 되는가? 아마 못해도 60개 이상인 것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하고 많은 서체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대개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않을 뿐이다. 서체를 인지할 상황이 온다면 굉장히 눈에 띄게 잘된 폰트이거나 매우 부자연스러워 그것에 어울리는 폰트인지 확인할 때이다. 우리는 모두 활자 소비자다. 당신의 상사, 교수님, 동료들도 당신의 글을 읽을 때 폰트를 접하게 된다. 그런데도 쉽게 보고 넘어갈 수 있을까? 아직도 폰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헷갈리는 사람들을 위해 그 중요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기업도 주목한 폰트

 2013년에 개봉된 영화 잡스를 보면 스티브 잡스의 폰트에 대한 강한 집착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폰트를 통해 기업의 비전을 보여주려 한다. 폰트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잡스의 말처럼 현실에서도 폰트가 기업의 비전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힘을 가지고 있을까?

 배달음식을 즐겨먹는 사람이라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폰트 같은데?”라고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한국인들을 백의민족보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일등공신인 우아한형제들한나체이다.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는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폰트를 주목했다. B급 감성이면서도 키치한 느낌을 지닌 폰트를 만들기 위해 대표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 폰트 개발에 힘을 쏟았다. 완성된 폰트는 기업의 버스광고, 포스터 등에 사용되며 소비자들이 한나체=배달의민족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배달의민족 유입경로는 옥외광고가 압도적으로 높았을 만큼 큰 성공을 이뤄냈다. 한나체가 배달의 민족의 브랜드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한나체 외에도 주아체’, ‘도현체등 자신의 딸과 직원 등 사람의 이름을 딴 폰트를 개발하여 소비자들과 친밀감과 유대감을 형성했다. 또한 제작한 폰트를 무료 배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갈 수 있었다. 흥행에 있어 휼륭한 서비스가 당연히 기반이 되었지만 폰트도 아주 큰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배달의 민족은 배달앱 선호도 1위를 굳건히 유지하며 순행을 달리고 있다.

 폰트를 통한 마케팅하면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또 있다. 바로 현대카드이다. 2003년 업계 꼴찌에서 2010년 세전이익 1조원을 달성하며 업계 2위로 발돋움한 비결이 무엇일까? 은행사나 카드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다. 하지만 현대카드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돈만큼이나 디자인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많은 기업들이 기업 전용 서체를 개발했지만 당시만 해도 브랜드경영을 위해 서체를 개발하는 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 ‘유엔아이체는 현대카드의 모든 마케팅, 기업 내 자료에 활용되며 기업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통일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소비자와 가장 쉬운 접점을 지니고 있는 서체의 특징을 간과하지 않은 현대카드의 영리한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살펴본 두 기업은 각 분야에서 정상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좋은 서비스와 여러 가지가 종합적으로 합쳐졌을 때 이뤄낸 성과겠지만 우리가 두 기업을 떠올릴 때 그런 것보다 먼저 기억하는 것이 바로 폰트이다. 배달의민족은 광고모델인 류승범씨와 한나체를, 현대카드는 유앤아이체가 쓰인 콘서트 포스터를 보면 이거 현대카드에서 주최한 콘서트구나.” 바로 유추가능하다. 각각 폰트의 이미지가 각 기업의 브랜드의 가치와 추구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만큼 쉽고 깊숙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마케팅은 없을 것이다. 지금 사례는 일부이지만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기업을 폰트로서 기억한다. 더 나아가 자동차 계기판, 교통 표지판, 공항 안내, 경고장 등 실생활에서도 폰트는 그것들의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다. 이렇듯 현재 폰트는 세상을 기억하는 도구로써 사용되고 있다.

 

폰트는 나의 얼굴이다.

 누군가 말을 할 때 그들이 말하는 실제 단어 중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단 10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 90퍼센트 이상 은 화자의 어조나 표정, 몸짓, 언어, 그리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과 같은 시각적 단서를 통해 그 의미가 전달된다. 폰트는 그런 옷과 유사한 방식으로 비언어적인 정보를 전달한다. 우리가 선택한 서체는 우리가 얼마나 진지한지 세상에 알려 주고 그 글을 읽으려는 사람에게 미리 우리의 감정이나 의도에 대해 알려준다. 누군가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거나, 하는 말이 행동과 일치하지 않았을 때 눈치를 채는 것과 같이, 만약 우리가 어울리지 않는 폰트를 사용한다면 우리의 의도에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밑에 포스터를 예시로 보자.

 차이가 느껴지는가? 윗 포스터는 힘을 북돋아주는 느낌을 자아낸다면 아래쪽 포스터는 공포영화에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폰트만 변화를 줬을 뿐인데 포스터의 텍스트가 내포하는 목적과 컨셉까지 달라져 버렸다. 다음은 실제로 있었던 폰트와 관련된 일화이다.

 

 ‘잘못된 서체를 선택하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신뢰도나 위상을 떨어트릴 수 있다. 2012년 유럽 원자핵 공동 연구소 ‘CERN’은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과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발견 사실보다 발표문에 쓰인 코믹산스가 더 많은 화제를 불러왔다. 그런 중요한 과학적 발견이 만화책에서 영감을 받은 문체로 발표됐어야 하는지 큰 논란이 되었다. 물론 발견 자체가 더 중요하니 폰트가 무슨 상관이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반응은 차가웠다. 사람들은 정통과 권위 있는 학회의 발표 자리에 쫄쫄이 옷을 입은 스파이더맨이 발표를 진행한 것으로 느꼈을 것이다. 학자가 코스튬 등을 입고 익살스럽게 발표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폰트가 발표자의 이미지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어떤 서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다. 그렇기에 우리는 폰트를 선택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 폰트를 잘 활용하려면 어떤 것들을 주의해야 할까?

  지금까지 폰트에 대해서 알아봤다.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데 있어서 부가적인 부분일 수 있는 글자의 모양이 사회 다방면에 이렇게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정성을 들이면 받는 이로 하여금 그것이 분명하게 전달된다. 이것이 곧 당신을 보는 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 글을 읽고 폰트 사용에 있어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 완벽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당신의 글이 완성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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