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회 한남문학상 독서 감상문 당선작
44회 한남문학상 독서 감상문 당선작
  • 미디어 한남
  • 승인 2018.04.0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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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굶주림이 더 이상 일상의 풍경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2016 갈라파고스』를 읽고 나서

린튼글로벌 커뮤니케이션컬쳐 4학년 이인영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어느 저녁, 핸드폰 액정 위로 화면이 비춰지더니 메일 하나가 도착하였다. 5월 말에 지원했던 유엔세계식량계획 서아프리카지역본부(UN World Food Programme, 이하 WFP)에 지원했던 인턴십 프로그램에 대한 회신이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학기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UN 인턴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왠지 관련 서적도 한권 정도는 사서 가야할 것 같은, 어쩌면 허세였을지도 모를, 의무감에 사로잡혀 서점에 들러 책을 구입했다. 이 글은 당시 내가 집어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대한 독서 감상문인 동시에 자전적 형식의 수필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일말의 고민이랄 것도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은 독자들의 이성과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고, 표지에 자리 잡은 아프리카 소년으로 보이는 듯 한 사진은 학습되어진 연민을 다시금 상기시키듯, 감성을 자극하였다.

현재 나는 이 글을 세네갈 다카르라는 지역에서 쓰고 있다. 9월에 이곳으로 인턴십 파견을 나와 어느덧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집어 들었던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핵심부이자 글의 무대가 되는 현장으로 직접 뛰어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본 책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라고 물어본다면, 아니었다고 답할 것이다. 적어도 몇 주 전까지는 말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본 서적을 펴본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장시간의 비행에 필요로 하는 이동시간에 읽으면 금방 읽을 정도로 안성맞춤 일 것만 같았던 이 책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책상위에서 먼지만 쌓아가고 있었다.

내가 책을 꺼내들어 읽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이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리고 이 곳 현지에서도 몇 번이고 꺼내어들었지만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한 채 덮어버리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지금 돌아보면 생각하건대, 가장 큰 이유는 ‘공감’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생소한 지역 명에, 알 수 없는 숫자들의 향연, 그림 하나 없는 딱딱한 수치들. 그리고 지금까지 적지 않은 나이를 살아오며 마주해본 ‘가난’과 ‘기아’라고는 고작 TV에서 보아왔던 것이 다였으니, 그것은 내 세상이 아니었고,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며, 결국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던 중 WFP 근무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접해나가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하는 Daily News Roundup(서·중앙아프리카 19개 지역 현안관련 뉴스업무)와 두 번의 필드미션(세네갈 지역 중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Kolda지역과 사헬문제로 분쟁과 식량불안정이 끊이질 않는 Niger지역)을 통해 나의 생각과 사고는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 후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몇 개 있지도 않은 책들 사이에서 꺼내들어 먼지를 털은 뒤, 정독하기 시작했다.

본 책은 1999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8년이 지난 후인 2007년 초판을, 그리고 2016년 개정증보판으로 재출간되었다. 본 책이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으며 계속 출간되는 이유에는, 수시로 변해가는 데이터와 객관적 사실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도, 본 책의 저자이자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식량 특별조사관으로 일했던 장 지글러(1934, 스위스 출생; 그 외에도 사회학자, 기아문제연구자 등으로 알려짐)의 세계를 향한 깊이 있는 통찰력에 그 지대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에서부터 북한까지, 총 27개의 국가(그 중 G5 사헬연맹이라 불리는 사헬지방은 사하라 사막의 남부일대를 지칭하며 다섯 개의 국가를 포함한다; 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 차드, 모리타니)를 다루고 있는 본 책은 마치,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대화처럼, 아빠와 아들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다소 막막하고 버거울 수 있는 주제들을 때로는 심도 있게, 때로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질문과 답을 반복해나가며 풀어내고 있다.

본문의 첫 장은 ‘일상의 풍경이 된 굶주림’이란 제목으로 시작한다. 나는 이 제목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혼자 되뇌었다. 어느덧 들어도, 보아도, 그리 충격적이지도, 더 이상 크게 슬프지도 않은 우리네 삶의 풍경처럼 드리워져버린 ‘굶주림’ 나 역시 어느새 무덤덤해지다 못해, 무심해져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과거 소말리아에서 촬영된 기아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에 대한 뉴스에 유럽인들이 느끼는 무감각성, 그저 하나의 일상으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미디어 시청자들의 행태에 대해 고발하며 책의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유럽인들만의 현실이 아니다. 우리 역시 타인의 가난과 고통, 그리고 굶주림에 얼마나 무심하게 살아왔던가. 저자는 더 나아가, 미디어를 통해 가난과 굶주림, 고통을 접하는 현대인들의 무감각성,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들, 심화되고 있는 빈부의 격차,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위시한 불합리한 시장경제체제 등을 비판한다. 1999년 지글러는 이러한 행태들이 심화될 것이며,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하였고 그의 전망은 맞아떨어졌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문제들은 여전한 숙제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저자는 각 챕터에서 특수한 상황 속, 특수한 사회·문화·정치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각각의 국가와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원인을 통찰력 있게 분석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 중에서도, 본 책의 내용과 주제와 관련하여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느낀 것이 있다면, ‘기아의 형태’이다. 저자는 기아에도 형태가 있음을 밝히며, 그것을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로 나누어 생각한다. 예컨대, 경제적 기아란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하는 기아’를 뜻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 곳 다카르에 도착하기 바로 며칠 전에 일어난 ‘시에라리온(서아프리카 지역) 산사태’를 꼽을 수 있겠다. 당시 산사태는 사상자를 약 1,000여명 이상, 실종자를 600여명 이상 낳은 최악의 자연재해였다. 이는 경제적 기아를 잘 설명한다. 산사태로 터전을 잃고,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며, 상점이 파괴되고, 다리가 사라지는 등 국제적 도움이 없다면 금세 굶어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 이러한 형태의 기아를 ‘경제적 기아’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편, 구조적 기아란 ‘장기간에 걸쳐서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경우’를 뜻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급수설비나 인프라의 미정비등으로 발생하는 사회구조적 기아의 형태를 말하는 것 이다.

세네갈에 처음 왔을 때,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머물고 있던 집의 전기와 수도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끊겨버리는 일이 있었다. 물이 나오지 않자 씻을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졌다. 다행이 늦은 밤이나 아침이 되면 다시 공급이 돼 커다란 지장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세면세척에 불편을 느낀 점이 여간 많았던 것이 아니다. 결국 집주인에게 컴플레인을 하였고, 돌아온 답변은 가끔 있는 일이라며 세네갈의 급수시스템을 지적했다. 결국 마트에서 대량의 생수PT를 사왔고, 물이 나올 때까지 식수로 간단한 세면을 해결해야만했다.

만일, 이러한 일이 빈곤층에게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씻을 물이 모자라 ‘돈’을 주고 식수를 구입해 씻을 수밖에 없는 이러한 아이러니한 현실. 결국, 돈이 없는 빈곤층은 마실 물도 부족한 상황에서 청결을 포기하게 되며, 이는 곧 또 다른 형태의 굶주림이자, 가난의 고리, 기아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그리고 구조적 문제로 인해 야기되는 질병/가난/고통은 기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적·세계적, 그리고 사회적·개인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허나, 지글러는 기아와 굶주림은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지속적으로 명시한다. 국제사회가 엄청난 기회비용을 지불하였음에도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을 뿐더러, 심각성이 날로 더해지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에 저자는 각 국가마다 복합적인 문제에 따른 해결방안 역시 다각도적인 측면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함을 강조하며, 세계의 가난과 굶주림을 제거하기 위한 몇 가지의 극복방안을 거대담론적인 차원에서 제시한다. 첫째, ‘인도적 지원의 효율성’, 둘째 ‘원조보다는 개혁’, 셋째 ‘인프라 정비’가 그가 외치는 연대의식의 필요조건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제시하는 방안들이 결국은 한 가지의 방향성을 뚜렷하게 목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타인의 아픔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만 희망이 존재함을 그는 책 전반에 걸쳐 역설한다.

가장 인간다워야 할 인간이, 인간성을 잃은 채 혹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 채 탐욕을 부린 것의 결과가 지금의 세계의 ‘굶주림’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지글러는 지적한다. 이는 저 멀리 떨어진 서방국가의 얘기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와 당신의, 그리고 곧 우리의 이야기이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리고 현실을 직접 보고 경험하기 전까지 나 역시, 그저 위선자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글러가 새로이 책을 개정할 때마다 냈던 개정판 서문의 주제들을 함께 나누며 글을 마치려고한다.

기아의 고통 앞에서 무심해지지 않기를.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라고 스스로 되물을 수 있는 세계시민의식을 겸비한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은 굶주림이 일상의 풍경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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