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 몸도 재가 될 텐데
내 한 몸도 재가 될 텐데
  • 박효선
  • 승인 2020.02.19 13:53
  • 조회수 9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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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을 강타한 욜로(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 You Only Live Once)와 워라밸(일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 work-life balance),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처럼 여가를 보낼 때 혹은 무언가를 먹을 때, 행복을 위해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이 익숙한 요즘이다. 이러한 사회 변화에 발맞춰 삶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까지 행복하게 맞이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웰다잉(존엄사, well-dying)’이다. 과연 ‘행복한 죽음’이 가능할까?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자.

 

 웰다잉(well-dying)이란

‘웰다잉’은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참살이(웰빙, well being)와 죽음(dying)의 합성어이다. 국내에서는 1997년 ‘보라매 사건’으로 인해 안락사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사건 이후 안락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었음은 물론이며 병원 측에서는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더라도 퇴원 절차를 받아줄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기도 했다.

안락사 논란은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으로 다시 불거졌다. 대법원은 질병 호전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연명 치료 행위는 무의미한 신체 침해 행위이며, 이는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한다고 명시하였다.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행위는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하는 자기 결정권에도 부합하는 내용이며 이 사건은 국내에서 연명 의료 중단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였다.

김할머니 사건 이후 연명 의료 중단은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견과 악용의 우려 등으로 찬반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사회의 관심 속에서 ‘연명의료 결정법’이 2016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률의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다. 호스피스 분야는 2017년 8월, 연명 의료 분야는 2018년 2월부터 시행 중이다. 이때 연명 의료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의 4가지 의학적 시술을 일컫는데, 2019년 3월부터 체외 생명 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치료 및 담당 의사의 판단 아래 시행하는 시술도 연명 의료에 포함하여 종류가 확대됐다.

자신의 연명 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하고 싶다면, 누구나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의 경우에는 ‘연명 의료 계획서’를 작성하여 자신의 의지대로 임종 과정을 맞을 수 있다. 이때 사전 의향서나 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환자 가족의 합의를 통해 연명 의료 여부를 결정한다.

 

 ‘안락사’ vs ‘존엄사’

연명 의료 결정법은 존엄사법 또는 안락사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안락사와 존엄사 모두 환자의 의사 결정을 존중하는 점은 같지만, 안락사가 더 넓은 의미의 개념이다. 안락사는 물리적으로 약물 등을 투여해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고 존엄사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의학적 의료 행위를 중단하는 것으로 소극적인 안락사에 속한다.

안락사는 약물을 주입하는 등 누군가의 행위를 통해 죽음을 맞는 것이기 때문에 타살로 보는 시각이 있어 찬반논란이 팽팽하게 맞선다.

 

 웰다잉을 위한 움직임

웰다잉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2018년 일산에서 ‘세계 엔딩 박람회’가 열렸으며, 웰다잉 체험 센터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해외에서도 행복한 죽음을 위해 소원을 들어주는 독특한 재단이 있기에 이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 효원 힐링센터

영등포에 있으며 웰다잉과 힐다잉(힐링, healing+다잉, dying)을 목표로 각종 체험을 진행한다. 웰다잉을 소개하는 강의로 시작하여 영정 사진을 촬영하고 직접 유언장을 써보는 체험을 한다. 체험관에서 입관 체험을 통해 자신의 임종을 경험하면 현재 남은 생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고 남은 미래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다.

 

- 네덜란드 앰뷸런스 소원 재단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2006년 설립된 단체다. 내부에서 밖을 볼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구급차로 의료진과 운전사가 2인 1조를 이루어 동행한다. 대상 환자는 호스피스 병실의 10개월 아기부터 말기 암 투병 중인 101세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시한부 환자들은 ‘박물관에서 렘브란트 그림 감상하기’, ‘말타기’, ‘축구 경기 보기’ 등 거창하지 않은 마지막 소원을 이루고 만족스럽게 삶을 마무리한다.

이 외에도 국내의 국립 연명 의료 관리기관 사이트에서 사전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으며 다양한 웰다잉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들어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외에도 국내의 국립 연명 의료 관리기관 사이트에서 사전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으며 다양한 웰다잉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들어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웰다잉’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자 대중에게 웰다잉을 알리고 있는 강사를 만났다.

1. 강사로 활동하며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나요?

- 용서와 화해 교육이 기억에 남아요. 자신이 겪은 가장 힘든 시간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진솔한 감정을 나누는 과정이 늘 새로워요. 어렵겠지만 나중에 후회하기보다는 지금 용서하고, 화해하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 죽음이란 슬프기 마련인데, 남겨진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가 있을까요?

- 죽음이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남아있는 사람이 죄책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예를 들면 ‘내가 더 잘할걸’, ‘부모님을 좋은 요양 병원에 모실걸’하는 슬픈 마음이요. 남아있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죄의식을 갖는 게 아니라 어렵겠지만 ‘자연스럽게 생을 다 하고 갔다’고 인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3. ‘연명 의료 결정법(약칭)’에 대해서 악용을 우려하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보험금을 원해서 사고를 내는 경우나, 요양 병원만을 의지하는 상황처럼 현실에서는 악용의 우려가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강점이 더 많은데 강조된 일부 사건을 보고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의료 관계자들이 더욱 노력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개인의 도덕적 의식도 중요하겠죠. 거기에 가족의 사랑과 웰다잉에 관한 의식이 있으면 더 좋겠고요.

4. 웰다잉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무엇일까요?

- ‘모두가 행복한’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 가족이 덜 아프도록 사전에 준비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이에게는 평온함을, 떠나보내는 이는 웃을 수 있는 행복감이 중요할 것 같아요. 혹시라도 주변에 떠나보낸 사람을 잊지 못했다면, 주변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 많이 힘들어한다면 위로가 될 수 있는 마음가짐을 함께 가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아파하지 않기를 바라는 ‘공감의 말하기’를 함께 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를 오래된 친구처럼 맞이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웰다잉’이다. ‘죽음은 나그네의 휴식, 모든 수고의 끝’이라는 명언처럼 잘 사는 방법을 찾아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산다면, 존엄한 죽음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현재 삶이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먼 훗날 모든 수고를 내려놓고 바라보는 삶의 모습은 빛나는 불꽃이며, 휴식을 맞은 육신은 모닥불 아래 찬란한 재처럼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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