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이하 이 교수)가 주도한 ‘이국종 닥터헬기’가 마침내 운행을 시작했다. 이 교수가 외상센터와 응급헬기의 중요성을 주장한지 약 15년 만이다. 이 헬기의 콜사인 호출부호는 ‘ATLAS 001'로 올해 초 설 연휴에 응급의료 현장을 지키다 순직한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혼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의료 활동에 굳이 헬기와 소방대원 배치는 과하다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이 교수는 왜 닥터헬기를 고집했을까? 그 이유와 그들의 노력과 성과에 대해 알아보자.

닥터헬기란?

 닥터헬기는 왜 필요한가에 대해 알아보기 전 골든타임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골든타임이란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을 말한다. 보통 교통사고와 같은 중증외상은 1시간, 뇌졸중 발병환자는 3시간이다. 이 시간 내에 제대로 된 응급처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10대 이상 30대 이하의 사망원인 중 2위가 운수사고라고 하니 우리의 생명과도 직접적인 연관성이 높다. 닥터헬기는 그 꺼져가는 생명을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다준다. 닥터헬기란 의료진이 탑승해 출동하는 헬기로 응급환자의 치료와 이송 전용으로 사용되는 일명 ‘날아다니는 응급실’이다. 위급한 환자의 골든타임을 지키며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병원으로 이송하는 최고의 이동수단이라 할 수 있다. 중증외상센터에서 매번 골든타임 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잃은 목숨을 가장 많이 봤을 이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닥터헬기의 발전과 확대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경기도 닥터헬기 의료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한국은 전국적으로 총 7대의 닥터헬기가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헬기의 운영이 원활하지 않아 실효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운행을 시작한 경기도의 닥터헬기에서는 기존보다 준비과정, 시스템 등에서 확연히 개선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기존의 닥터헬기는 소형모델이라 비행거리가 70km로 제한되어 있다. 또한 다수의 환자 이동과 응급처치를 수행하기엔 너무 작다. 반면 이 교수가 선택한 중형급 헬기인 Airbus Helicopter 사의 H225 모델은 총 6명의 환자를 동반할 수 있고, 의료장비를 충분히 갖춰 이송과 치료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선진국들의 ‘에어 엠뷸런스’ 시스템을 비슷하게 구색만 맞춰놨던 닥터헬기는 이렇게 좀 더 진화했다. 경기도와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는 ‘경기도 중증외상환자 이송체계 구축’이라는 업무 협약을 맺으면서 도내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경기도 중증외상환자 이송체계 구축 업무 협약 계획

※ 주요 내용

- 외상사망률 감소를 위한 중증외상환자 이송체계 구축 상호 협력

- (경기도) 소방시스템 연계 등 응급의료 전용헬기사업 지원 등

- (외상센터) 환자 진료 및 외상관리체계의 중추적 역할 담당 등

[출처] 경기도

이번 협약으로 경기도 닥터헬기는 24시간 항시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해 경기도는 2019년 본 예산에 51억 원(국비70%,도비30%)을 편성했다. 예산에는 헬기 임대료와 보험료, 인건비(항공인력), 정비 및 유류비 등 헬기 운영전반에 필요한 제반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야간비행에 필요한 운항지침을 제정하고 닥터헬기 운영에 가장 어려움을 빚었던 이착륙장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협약을 맺기 전, 경기도 내 닥터헬기 이착륙장은 588곳이었다. 이는 골든타임을 살리려는 닥터헬기의 목적과 다르게 오히려 이착륙장까지 환자를 이송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의 협력을 통해 도내에 소방헬기 착륙장, 학교와 같은 공공시설에 착륙장을 공유하기로 결정되어 총 2,420곳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경기도소방시스템과 연계하여 소방 구조·구급대원 파견이 가능해져 언제 어디서든 구조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번 정책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방행정부와 의료계가 협력하는 사회 내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동시에 단순히 경기도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며 작은 날갯짓이 가져올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경기도의 변화과정에 영향을 받아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보건복지부와 권역외상센터(진주경상대병원 설립 예정)에 도입될 닥터헬기에 대해 협의가 된 상태이며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협의를 추진 중이다.”라고 밝혔다. 충남 당진에서도 닥터헬기의 인계점을 늘리고 자동심장충격기를 추가로 설치하는 등 시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발걸음에 동참하고 있다.

 

위태로운 동아줄

생명을 구하기 위한 닥터헬기 제도는 매우 필요하다고 보이나 아직은 그 제도의 기반이 빈약한 현실이다. 첫째로 국내에 배치된 닥터헬기가 턱없이 부족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에는 총 7대의 닥터헬기를 보유하고 있다. 닥터헬기 첫 운항을 시작한 2011년 당시 이송환자 수가 76명이었으나 2017년 9월을 기준으로 이송환자 수는 5000명을 넘어섰다.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한 닥터헬기의 운항은 더욱 바빠지고 있지만, 단 7대의 헬기만으로 환자들을 최단시간에 온전히 이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둘째, 이착륙장이 부족하다. 2018년 12월 기준 전국 이착륙장은 소방청 소관 3,469개, 보건복지부 소관의 828개 등이 있다. 현재 한국은 정부에서 지정한 이착륙장이 아니면 닥터헬기의 이착륙이 불가하다. 이 두 가지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닥터헬기에 대한 ‘의식 부재’다. 헬기는 이착륙 시 프로펠러에서 굉음을 발생시킨다. 2018년 경기북부 권역외상센터의 경우 닥터헬기 소음에 의한 민원이 잦아진 이유로 센터를 폐쇄해야 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 서울지방항공청에 따르면 민원이 해결되지 않을 시 외상센터의 헬기 시설을 폐지해야 하며, 그렇게 될 시 외상센터의 지정 자체가 취소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 문제들은 닥터헬기제도가 한국에 자리 잡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과연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명확한 해답이 될 순 없겠지만 성공적으로 닥터헬기제도를 운행 중인 나라들의 사례와 한국이 시도한 해결방안에 대해 살펴보았다.

닥터헬기제도를 처음 도입한 독일의 경우, 현재 기준 총 80대의 닥터헬기를 보유하고 있다. 전국을 반경 50km의 원으로 구분하여 원에 한 대씩의 헬기를 배치하여 접근성을 높였다. 정부의 예산만으로 운용하고 있는 한국과 다르게 비영리 민간단체인 ADAC와 협력해 사회보험으로부터 운영비를 조달받고 있다. 미국은 ‘천조국’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929대의 헬기 수를 보유하고 있다. 그로 인해 미국 인구의 전문외상센터 접근이 용이해졌으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항공이 운영을 맡고 있어 안정성 위협을 받는다. 일본은 총 42대의 헬기를 운행 중이며 민간항공사의 헬기를 임대하여 지방·중앙정부예산으로 운용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학교 운동장, 야구장, 공원과 같은 임시 이착륙장을 많이 확보하여 소방본부에서 선정한 적합한 이착륙장에 착륙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앞에 언급한 국가들은 각 국가의 특성을 살려 필요한 수의 헬기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부의 예산만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헬기 수를 급격하게 늘리는 것은 국가예산에 큰 출혈을 낳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응급전용으로만 운항하는 닥터헬기의 경우, 예산안을 잘 구성해 천천히 늘리는 것과 소방, 경찰청, 산림청 등에서 보유한 헬기를 환자이송용으로 함께 쓰일 것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적인 검토도 시급하지만 우리나라에 닥터헬기제도가 정착하려면 시민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한국에 님비현상이 고착화되어 닥터헬기의 소음은 민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꾼다면 해결될 일이다.

 최근 닥터헬기에 대한 긍정적인 시민의식을 양성하기 위한 캠페인이 확장되고 있다. “닥터 헬기 소생 캠페인”은 닥터헬기 이착륙 시 발생하는 소음이 풍선을 터트릴 때 나는 115db에 불과하며 작은 배려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인식을 퍼트리기 위해 시작되었다. 방법은 소생 캠페인의 상징인 붉은 풍선을 터트리는 액션을 영상에 담아 공유하고 다음 동참자를 지목하는 방식인데, 시민들뿐만 아니라 연예계, 실질적으로 영향력 행사를 할 수 있는 정계, 행정계 인사들도 동참하여 좀 더 많은 인계점 확보와 의식 강화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헬기를 이용한 환자 이송은 비용이 많이 들고 전문인력과 여러 응급치료 장비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닥터헬기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아직까지 닥터헬기를 단지 소음을 내는 골칫덩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상용화가 늦어지고 있다. 입장을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보자. 지금은 불편하게 들릴 수 있는 소리가 나중에 자신의 가족, 이웃을 살릴 생명의 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동아줄을 구성하는 실 뭉치들은 한 가닥씩 보면 너무나도 쉽게 끊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의 작은 배려와 관심이 모여 동아줄이 된다면 전래동화 속 오누이를 구했던 생명의 동아줄이 될 수 있다. 한국도 하루빨리 닥터헬기가 상용화되어 죽음의 문턱에서 손 내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동아줄을 내려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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