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자 광복 74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엔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역사가 존재한다. 일제강점기에 존재했던 전범 기업의 제품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으며 몇몇 건축물은 보수, 수리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또한 그 시대의 관습을 여전히 따르고 있으며 우리의 ‘말’ 또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수많은 일제의 잔재 중 우리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평소 대화 속 일제 잔재 단어를 인식하며 사용해본 적이 있는가? 아래 표에 있는 15개의 단어 중 오직 3개만이 일제의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말이다.

이 중 오직 일제와 관련 없는 단어는 ‘운동회(運動會), 중학교(中學校), 야채(野菜)’이다. 실제로 한남대학교 학생들 100명을 상대로 위와 같은 설문을 실시한 결과, 정답률은 절반도 안 되는 수치인 약 ‘35%’에 불과했다.

위 단어와 같이 일상대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기에 일제의 영향을 받은 단어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로 ‘야채’와 ‘채소’를 들 수 있다. 야채(野菜)가 일본어에서 야채를 뜻하는 단어인 ‘야사이(やさい)’에서 유래되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따르면 채소(菜蔬)는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이라는 뜻이고 야채(野菜)는 들에서 자라나는 나물이나 채소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야채와 채소를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고 등재했으며, 야채는 본래 우리 민족이 쓰는 ‘배달말’이라고 밝혔다.

또한 일제의 영향을 받은 단어에도 일제강점기의 아픔과 직접적 연관성을 가진 단어, 일본말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쓰인 단어, 일본어투의 말이 변화된 단어 등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직접적인 영향성을 가진 경우, 대표적인 네 가지 예시가 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무심코 쓰는 말인 ‘땡깡 부린다’ 속에 있다. ‘땡깡’이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의 아픔에서 유래된 말이다. 일본어로 “癲癇(てんかん)”은 “전간” 즉 간질을 말하는데 이것을 ‘뗑깡’이라고 읽는다. 간질이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팔다리를 떠는 병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순사들은 강제 징용 등의 이유로 조선 사람을 끌고 갔다. 그 과정에서 복종하지 않은 조선인들은 강도 높은 고문 속에 의식을 잃기도 했다. ‘땡깡’은 이런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비하하는 일본 순사들 사이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현재 이러한 단어를 간질, 발작하듯 억지, 행패를 부린다는 뜻으로 ‘땡깡’+부리다 꼴로 쓰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땡깡’이라는 단어를 ‘생떼’, ‘억지’란 말로 대체해서 사용해야 한다.

두 번째로 공사 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인 ‘노가다’이다. 노가다란 일본어로 “土方

(どかた)”로 공사판의 막벌이꾼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건축 현장과 같은 곳에 강제징용 되었던 일제강점기 시절, 힘든 작업 현장을 비유하며 쓰였던 말에서 유래됐다. 이 단어는 ‘막일꾼’, ‘공사판’의 잘못된 표기임으로 순화해서 사용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우리가 살아가며 한번쯤은 사용했을 단어인 ‘유치원’이다. 이 단어는 영어인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을 번역한 일본식 발음이다. 1897년, 부산에 체류하고 있던 일본인의 유아기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한 기관을 유치원이라고 명명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상 학교로 지정돼 있으며, 정부와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유아학교’로의 개명을 촉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다.

네 번째로는 응원할 때 외치는 ‘파이팅(fighting)’이다. 실제로 영어권 국가에서는 ‘fighting'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일본에서 복싱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fight’에서 시작된 단어로 일본식 영어발음으로 바뀐 것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와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출진구호 ‘화이또’로 쓰인 것이 ‘파이팅(화이팅)’의 유래이다. 이 단어는 운동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에 외치는 소리로 ‘아자’, ‘힘내자’ 등과 같은 단어로 대체하여 사용해야한다.

이 외에도 희미하며 분명하지 아니한다는 뜻을 가진 ‘애매하다’, 거짓말을 뜻하는 ‘구라’, 상처를 뜻하는 ‘기스’, 얼굴을 뜻하는 ‘와꾸’ 등 일상생활 속에는 다양한 일제 잔재 단어들이 존재한다.

위 표처럼 일제 잔재단어를 순화할 수 있는 우리말 대체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여전히 일제 잔재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한남대학교 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일제 잔재 인식과 사용에 관해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총 98%의 학생들이 일제 잔재단어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또한 일제 잔재단어인 것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는 46%의 학생들이 예(알고 있음)에 답하였으며, 알고 있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는 답변은 약 43%를 차지했다.

 이처럼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여전히 일제의 잔재가 존재한다. 언어는 빠르게 변화하며 사회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것은 자국 내의 영향일 수도, 타국의 영향일 수도 있다. 실제로 외국으로부터 들어와 한국어에 동화되어 한국어처럼 사용되는 단어인 ‘외래어’는 주변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 잔재단어는 의도치 않았던 타국의 영향일뿐더러 회복되지 않은 우리의 아픔이다. 역사는 절대 과거의 죽은 지식이 아니다. 역사를 알면 과거를 장악할 수 있고, 과거를 장악하면 현재를 움직일 수 있으며, 현재를 움직이면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꾸준하게 발생하고 있는 위안부 망언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 등 그 시대부터 이어져온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나갈 숙원이다.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말’의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평생의 숙원을 풀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숙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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