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에 위치한 솔랑시울길은 대전역 인근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기차가 지나다니면서 전통의 모습을 간직했던 마을이 사라지고 현대화를 이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로 인해, 대전은 대도시로 발전하게 됐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이곳에는 일본인 철도 기술자들이 일본식 가옥을 지으며 살았다. 이 가옥은 현대적인 인테리어, 디자인 기술을 접목시켜 과거와의 공존을 이룬다. 이런 소소한 변화와 옛 건축물들이 남아 있는 소제동을 알아보자.
소제, 솔랑이
‘반짝이는 솔랑산길’이라는 의미를 지닌 솔랑시울길은 소제동 철도관사촌이다. 소제동은 과거 ‘소제호’라 불리는 호수가 있었는데, 중국 쑤저우지방의 빼어난 호수와 경관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소제호 주변에는 소제, 솔랑이로 불리던 전통마을이 존재했다. 소제는 소제호 호수, 솔랑이는 솔랑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1900년대 초반 소제동은 전통마을 모습이 가득했던 곳이다. 하지만 1907년 솔랑산 자락에 ‘태신궁’이라는 일본 신사가 건립되고, 대전역 개발과 함께 1927년 일제에 의해 소제호가 매립됐다. 그 위에 전국 최대 규모의 철도관사촌이 세워져 이전의 전통마을 소제동 모습은 사라지고 점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철도관사촌은 과거 일본 철도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였으며, 적들이 만들어 놓은 집이라는 ‘적산가옥’도 볼 수 있었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지어진 철도관사촌은 북관사촌과 남관사촌이 존재했지만 6·25전쟁과 도시화로 대부분 소실돼, 현재 소제동은 1920년-1930년대 건물 40여 채만이 남아있다.
폐가로 남은 철도관사촌
분명 사람이 사는 마을이지만 곳곳 폐가들이 즐비하고 있어 자칫 음산해 보인다. 현재는 동관사촌만이 살아남아 우리에게 역사로 남아있다. 길을 걸으며 주택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꽤 커다란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하나의 주택에 두 가구가 모여 사는 이호연립주택 이었기 때문이다. 슬레이트 지붕과 낡은 기왓장으로 지어진 집들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주택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의 생활양식은 대전 곳곳에 남아있으나 그 중심에는 소제동 솔랑시울길이 있다. 일본식 지붕으로 덮인 낮은 집들과 과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정표, 그 위에 색색의 벽화와 골목길을 뛰노는 어린아이들이 겹쳐지며 골목길은 새로운 정취를 풍긴다.
솔랑시울길 위에 예술을 덧입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소제창작촌’을 마주할 수 있다. 이곳은 2012년부터 대전시와 아트허브가 협력해 ‘철도관사촌을 활용한 공동체 문화 창작 레지던시’를 진행했다. 작업실이 없는 젊은 예술가들은 사업의 지원을 받고자 이곳에 모여들어 예술 활동에 전념했다. 현재 창작촌에서 7기 작가 5명이 글과 사진, 미술 등 다양한 창작 활동으로 마을을 기록하고 있으며 8기 작가를 모집하고 있다.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오면 소제관사 42호에 자리한 첫 번째 창작촌 ‘어리연’이 보인다.
‘어리연’은 과거 소제동에 있던 연못 소제호에 피는 ‘어리연꽃’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소제동을 추억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마음이 엿보인다. 어리연을 오른쪽에 끼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오면 ‘시울마실’이라는 하얀 간판과 함께 색다른 공간이 있다. 이곳은 게스트하우스로, 외국작가들이 머물면서 창작촌의 작가와 협업하여 아카이브 등의 활동을 진행한다. 이 외에도, 전시 공간인 ‘재생공간 293’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창작촌의 작가들은 5월에 주민들과 함께하는 골목 축제부터 하반기 마을 아카이빙 전시회까지 바쁜 한 해를 보낸다. 공동체의 소중함을 알고 잔잔히 살아가는 이들은 방문객과 주민들에게 동네의 풍경과 역사를 기억하도록 한다.
소제 창작촌은 2018년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스타크의 시민 참여형 환경개선 프로젝트 사업에선정되어 ‘공공미술을 통한 소제동 골목길’을 주제로 더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창작촌 작가들의 시를 전시하고, 겨울왕국의 ‘올라프’ 캐릭터 벽화를 그리는 등 볼거리를 꾸몄다. 그뿐만 아니라 관람객과 어르신이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여 문화적 빈곤층을 줄이고 함께 만들어가는 전시 공간임을 느끼게 했다. 올라프 그림을 등지고 얼마간 걸으면 노랗게 물든 골목길이 나타난다. 노란 담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산뜻하게 해주며 벽에는 성심당 등 대전의 명소 그림이 있어 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솔랑시울길을 찬찬히 걷고 나면,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중심을 지나온 느낌이다. 옛 기억 위에 예술을 덧칠한 소제동 골목길에는 지금도 젊은 창작가들의 도전이 끊이지 않는다.
감성으로 찾아온 소제동
날이 갈수록 대전역 근처로 몰려오는 젊은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낙후된 동네라는수식어에는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과거의 향기를 느끼게 하여 일상에 지친 피로를 극복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전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옛가옥과 현대의 그 사이, 오아시스]
오아시스는 솔랑시울길에서 도보로 5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 메뉴는 커피, 에이드, 티, 케이크로 심플한 편이다. 주변에는 오래되고 사람이 살지 않는 주택이 많아 이런 곳에 모던한 디자인의 카페가 존재한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기존 고옥들의 형태를 최대한 살려 훤칠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이 든다. 옛 가옥의 뼈대를 그대로 남겨두고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과거의 건축 기술과 현재의 인테리어 기술의 공존을 볼 수 있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과 카페 내부에 배치된 긴 테이블은 분위기를 한층 세련되게 만들어준다. 옛 건물에 현대 디자인을 더해 솔랑시울길의 가치를 더 높여준다.
[옛 가옥과 불교의 만남, 그레이구락부]
소제동 카페 오아시스 바로 옆에 있는 그레이구락부는 들어서기 전 입구에 있는 불상들의 디
자인으로 신선한 충격을 준다. 메뉴는 디저트, 칵테일, 와인, 커피, 에이드, 플레이트로 구성되
어 있다. 불교식 인테리어, 디자인 그리고 옛 가옥의 뼈대를 그대로 사용하여 트렌디한 디자
인에 과거의 향수를 더했다.
[소제동의 작은 유럽, 슈니첼]
슈니첼은 독일 가정식 식당이다. 오래된 집을 개조한 식당으로 외관은 한옥의 형태를 띠지만 이와는 다르게 양식을 판매하고 있다. 양식집 분위기에 걸맞게 내부는 유럽풍의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다. 소파와 의자, 조명뿐만 아니라 식기 또한 마치 유럽에 와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가게 중간 내부에는 작은 정원이 있어 마치 온실 같은 느낌을 준다. 벽면이 모두 통유리로 돼있어 밖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집의 매력이다.
큼지막한 나무, 빛이 반사되는 간판, 좁은 골목, 시간의 흔적을 거스른 솔랑시울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물과 오래된 추억이 스며든 골목길. 바쁜 일상 속에 여유없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약간의 휴식을 주는 길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을 의미하고 현재는지금의 시간을 의미한다. 과거와 현재는 물과 기름처럼 공존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솔랑시울길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마주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서부터 근대, 현대를 거쳐 오래된 건물과 골목, 간판 등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