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피워놓고, 읽어봐요
모닥불 피워놓고, 읽어봐요
  • 박효선
  • 승인 2020.02.19 13:53
  • 조회수 39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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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가 고개를 숙이는 가을은 일 년 농사의 결실인 추수가 머지않은 시기다. 농부들은 추수를 끝마친 들판에 모닥불을 피움으로써 농사를 끝맺는다. 한 해 동안 가꾼 곡식을 수확하고 들판의 화려함이 거둬지는 순간, 빈 들판에는 모닥불이 피어난다.

문학에서 모닥불은 작가가 흔히 사용하는 비유적 매개체이다. 그렇기에 여러 작품 속에서 다채롭게 드러난다. 그중에서 모닥불의 이미지가 잘 떠오르는 시와 소설을 각 2편씩 선정하였다. 따뜻한 방 안에서 모닥불을 떠올리며 느긋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함께 알아보자.

1. 시와 모닥불

(1) 「고양이는 불 옆에 있고」,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프랑시스는 1868년 프랑스 남서부 지방에서 태어났다. 프랑시스의 어조는 부드럽고 겸손하며 읽는 이의 마음도 차분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시에서도 프랑시스는 고양이가 누워있는 어두운 부엌에서 유일하게 밝은 모닥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덤덤하게 서술한다.

가랑비가 내리고 부엌은 어두침침하다. 비가 와서 바닥이 다 젖고, 모든 것이 검기만 한 부엌에서 오롯이 시인이 떠올리는 ‘너’와 벽난로의 불빛만이 환하다. 음식이 쌓여 있고 그 옆에 누워있는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벽난로 불이 타오르는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프랑시스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을 관찰하고 이를 독특하게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 시인이 본 풍경이 생생히 그려진다. ‘너만은 희리라’라고 외친 이는 사랑하는 사람일지 그리운 사람일지 확실히 알 순 없지만, 무척 소중한 사람이라는 건 확실하다.

(2) 「모닥불」, 백석

백석의 시에서 방언은 낯설기도 하지만 친근한 느낌을 준다. 「모닥불」 에서도 세밀한 묘사와 방언으로 가족에 대한 향토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헌 신발 한 짝과 머리카락도 한데 모여 타는 ‘모닥불’에는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불을 쬔다. 모닥불은 사람들이 상하 관계없이 한자리에 모여 몸을 녹이기에 평등과 조화로움의 세계를 이룬다. 마지막 연의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라는 대목을 통해서는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힘든 유년기를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을 공동체와 섞이지 못하고 ‘슬픈 역사’를 지나온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고난을 겪은 우리 민족의 암울한 역사를 대변한다.

2. 문학과 모닥불

(1) 『별』,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프로방스는 도데의 고향으로, 작가의 창작에 큰 영감을 준 고장이다. 『별』의 부제는 ‘프로방스의 어느 양치기 이야기’인데, 작품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낸다. 어느 양치기 ‘나’가 스테파네트(Stéphanette) 아가씨에게 느끼는 순수한 사랑과 프로방스의 풍경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그림을 만든다.

어두운 밤, 아가씨가 추위에 떨자 양치기가 피우는 따뜻한 모닥불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과 함께 조화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2) 『태백산맥 - 「제1부 한의 모닥불」』, 조정래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대하소설 『태백산맥』이다. 태백산맥은 총 4부로 나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여순 반란 사건부터 1953년 휴전 협정 직후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그중 제1부 ‘한의 모닥불’은 여순 반란 사건이 종결된 직후부터 1948년 12월 빨치산 부대가 해방구를 장악하던 때를 다룬다.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해방이 오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으나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덜이 빨갱이’를 만드는 세상이다. 독립은 했지만, 그동안 백성을 지배하던 계급 체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급이 바뀌지 않고 한평생 주어진 운명에 맞게 살아야 하는 한이다. 조정래는 이처럼 민중의 억눌린 현실을 ‘한의 모닥불’에 비유하였다.

이처럼 작가들은 모닥불의 이미지를 각기 다양하게 표현했다. 백석의 시처럼 보잘것없는 것들이 모여 큰불을 이루는 모닥불의 불빛을 보며 누군가는 밤하늘의 별빛을 그려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민중의 투쟁과 역사를 읽어내기도 했다. 결국 어둠과 시련 속에서 남아있는 모닥불의 불빛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존재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캠프파이어의 불길이나, 모닥불 ASMR처럼 모닥불의 따뜻한 불길을 떠올리는 정서가 남아있다. 이를 기억하며 추운 겨울날, 모닥불의 온기를 담아낸 작품들과 함께 마음속에 모닥불 피워놓고 따뜻한 겨울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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