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회 한남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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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디어 한남
  • 승인 2018.04.0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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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야옹, 말랑말랑 외 1편

국어국문·창작학과 3학년 김기랑

야옹야옹, 말랑말랑

고양이는 달을 향해 날아가고 나는 꼬리를 붙든 채 쫓아가요. 동글동글 천진한 발바닥이 먹색 하늘을 휘저을 때마다 별들이 파스스 웃으며 땅으로 떨어져 내려요. 별이 내린 동네의 사람들은 아마 말랑말랑한 꿈을 꿀 거예요. 무지개색 젤리에 포옥 안겨 있는 것 같은, 잘 부푼 별의 조각을 오물오물 씹는 것 같은.

손바닥 안에서 선량한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면 누구나 하늘을 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것들로 무겁게 젖어 있지만 고양이는 엉뚱한 고개를 갸웃갸웃 기울이며 자신의 꼬리를 자랑해요. 한 순간도 사랑 받기 위해 비굴해 본 적 없는 또렷한 눈동자가 빤히 나를 들여다볼 때, 보송보송한 앞발로 내 축축한 눈썹을 토닥일 때. 나는 문득 달에 가고 싶어지는 거예요.

고양이는 기꺼이 제일 공들여 단장한 부분을 내어주고 나는 이 꼬리를 잡으면 추락하지 않을 것임을 완전히 믿어버려요.

만월의 밤이에요. 춤추는 빗줄기처럼 달의 노래가 쏟아져 내리면, 고양이들은 다 같이 고개를 갸웃하며 야-옹.

퐁 퐁 퐁, 비눗방울 같은 발자국 소리가 투명하게 하늘 위로 떠올라요. 달을 향해 헤엄치는 알록달록 수 천 개의 꼬리들, 별들은 간지러워 자꾸만 땅으로 떨어지고, 사람들은 말랑말랑한 꿈을.

믿지 못하겠다고요. 집사가 아니라면 그럴 수밖에요. 간택 받지 못한 불행한 당신에게,

이것만 말해줄게요. 모든 고양이의 눈동자색은 달이 정해준다는 것. 몰랐죠?

소년이 되기 전에

어렸던 나의 세계에서

나는 왕, 요정의 날개, 커다란 성벽, 작은 새.

그 모든 것들로 존재했어요.

발밑으로 굴러오는 달을 자주 안아주었고

파도를 반으로 접으면 눈이 내린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때로는 바람의 꼬리를 잡아 일기를 적기도 했어요.

최초의 풀잎 같은 손끝이 쓰다듬던 세계의 모든 빛들

저마다의 색깔로 상냥하게 나를 키워낸

오래된 나무와 모래성, 바퀴달린 말 인형, 나의 유모들.

작고 무른 손바닥이 쉽게 녹지 않았던 건

온 세계가 그때의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어린 왕에게 맞춰진 미지근한 온도들.

빗방울을 굴리던 지문을 다시 가질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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