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시골 인심(?)
충격적인 시골 인심(?)
  • 한남대신문
  • 승인 2020.06.1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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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과 신동호 교수

문화적 차이로 당황하게 되는 것을 흔히 컬쳐럴 쇼크라고 한다. 주로 외국에서 그런 일이 많다. 그러나 나는 외국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나라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곤 했다.

나는 33년 전에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7년 동안 살았다. 그때만 해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외국 생활에 대해 잘 모를 때였다. 나는 외국에 나가면 막연하게 무언가 엄청나게 다를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래서 여러 가지 문화적 차이가 있었지만 비교적 잘 받아들였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나의 고국, 우리 나라에서 컬쳐럴 쇼크를 경험하였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옥천에서였다. 나는 귀국 후 대전에서 15년을 살다가 12년 전 옥천으로 이사를 왔다. 조그만 텃밭이 딸린 단독 주택에 살면서 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출근 길에 가끔 이웃 아주머니 한, 두 분이 집 담장 옆의 꽃밭을 가꾸는 모습을 보곤 했다. 때로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하기도 하고, 말도 건네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꽃을 가꾸시던 어떤 아주머니께 그 꽃을 무엇이라고 부르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난 후 내가 학교에서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니 현관에 아침에 본 그 꽃의 모종이 대여섯 그루 있는 것이 아닌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후에도 비슷한 충격이 또 텃밭에서 일어났다. 나는 출퇴근 전후에 잠깐씩 채소를 가꾸곤 했다. 그럴 때 가끔 밭 옆에 살고 있는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 가끔 믹서커피를 한 잔씩 타서 가져다 주곤 하셨다. 이 또한 충격이었다.

세 번 째 충격은 그야말로 큰 쇼크였다. 내가 텃밭에 나가면 서로 인사를 나누는 밭 이웃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어느 날 나는 이분께, 혹시 들깨 모종 있으면 좀 달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분은 아직 모종이 덜 자랐으니 적당히 자라면 좀 주겠다고 하셨다. 사실 들깨는 씨앗이 싸고 모종이 쉽게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웃 간 나누어 쓰는 일이 흔하다.

그리고 두어 주일이 지난 어느 날 내가 퇴근 후 텃밭에 나가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들깨를 심으려고 비워둔 두 평 남짓한 땅에 깨 모종이 가득히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상상을 초월한 그 아주머니의 호의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건 분명히 컬쳐럴 쇼크였다.

그 후 나는 이런 이야기를 옥천 사람들이나 내 주변 사람들과 나누곤 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을 생각해 보곤 하였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가 우리 집에 손님이 오면, 갈 때는 꼭 빈 손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애쓰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어머님이 마당에서 대문까지 따라 나가서 손님에게 무언가를 쥐켜 주려고 애쓰시던 모습이 눈에 아련하다. 사실 옛날 내 고향의 그런 정경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옥천에서 받는 그런 호의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호의에 지금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 나는 원래 그러한 시골인심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서 지난 30년 동안 각박한 도시생활, 험난한 유학생활, 경쟁적인 직업생활을 배회하면서 힘겹게 살아야만 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측은하게 생각된다. 그 풍성한 시골인심을 떠나서 이제까지 버티어온 나! 이제 겨우 옥천에 안착하면서 안락한 보금자리를 찾은 것 같다. 옥천의 이러한 넉넉한 인심은 4차 산업혁명시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위기에서 기계나 돈으로 살 수 없는 보화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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