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도시
살아남은 자의 도시
  • 정윤재
  • 승인 2020.07.25 14:38
  • 조회수 336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처: 전태일재단

 

올해는 전태일 열사 분신 항거한지 50주기가 되는 해다. 그의 노동해방과 인간해방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전태일문학상도 올해로 28주년을 맞이하였다. 27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작품집 <살아남은 자의 도시>는 탄탄한 문장력과 덧붙여 노동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성찰이 잘 드러나 있다. 수상 작가들이 말하고 싶었던 노동의 가치란 무엇일까.

출처: 예스24
출처: 예스24

2019년에 진행된 제27회 전태일문학상은 약 407명의 사람이 신청했으며, 부문별로 시 753, 소설 118, 생활·기록문 104편이 접수되었다.

 

시 부문: ‘똑같은 손4/ 김철

똑같은 손조각만 만지다 전체를 잃어버리는/ 하청의 하층들이라며 하청의 재하청을 거듭하는 노동구조와 소모품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려냈다. 김철 시인 역시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8년째 일하고 있는 하청 노동자이다. 백화점이란 원청이 하청에 갑질하는 것에 대해 아무도 제재하지 못하는 현실을 누구보다 많이 봐왔을 것이다. 김철은 대학에 재학 중인 20대의 청년으로 그의 시에 청년의 시각으로 담은 노동의 현장이 생생히 그려진다. 그는 수상 소감으로 을과 을의 싸움이 만들어지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답답함을 느끼며 전태일 이름 석 자가 가지는 의미가 내겐 기쁘지만 무겁다라며 무엇을 쓸지 항상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심사평에서 그의 작품은 그려내는 상상력이 좋고 노동에 대한 주제 의식이 강하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투고한 작품들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믿음도 들었다. 하청의 하청 작업하는 손들, 단체행동하는 블루칼라의 나무들’, ‘스탬프를 먹는 저녁등을 인식하는 시인의 시선이 환기력을 준다.

 

소설 부문: ‘딱지란 무엇인가’ / 신수담

 단편소설 딱지란 무엇인가는 구청 주차민원콜센터 노동자들의 감정노동과 을과 을의 갈등을 담고 있다. 주차민원콜센터의 계약직 사원과 악성 민원인으로 만난 남녀가 현실에서 서로 호감을 느꼈던 이웃이라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소설에서 나오는 주차민원콜센터는 콜센터 중에서도 가장 노동강도가 높은 곳으로 하수종말 처리장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글은 작가 본인이 실제로 콜센터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였다. 그는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로 이런저런 비정규직 일자리를 경험한 여성의 노동 현실을 몸소 체험했다.

 심사평에서 여성 노동자의 갈등을 중심으로, 주인공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질 만큼 캐릭터가 살아 있어 긴장감이 놓치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결말 부분에서는 갈등이 급박하고 타협적이라 주제가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도 군더더기 없는 문장력과 안정된 구성으로 수작이라고 심사위원들의 입을 모았다.

 

생활·기록문 부문: ‘살아남은 자의 도시’ / 이득신

 생활·기록문 부문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살아남은 자의 도시. 이득신이 노동현장에서 겪었던 약 100일간의 일기다. 건설 현장을 전전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간 이득신이 느꼈던 희로애락을 솔직 담백하게 풀어놔서 그가 느꼈던 감정에 동요된다. 이 씨는 삼성그룹 공채 출신으로, 20년간 삼성맨으로 근무하다 사표를 냈다. 대기업 간부였던 그를 반기는 일자리는 별로 없었다. ‘초보자 환영이라는 문구에 지원한 건설 현장은 하필 삼성 반도체 공장 건설이었다. 대기업 사원에서 하청 건설노동자로 양극단을 모두 겪은 이 씨가 느낀 것들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의 기록엔 돼지우리와 다를 바 없는 숙소/흡연장이 유일한 복지시설노동현장의 열악함과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이 고스란히 보인다.

심사평에서는 노동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성찰이 잘 드러나 있다. 날짜별로 일기 적듯이 적어 내려갔는데, 문장과 표현력이 뛰어났다고 평했다. 다만 글의 호흡이 짧아 조금 더 길게 가져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였다.

 

 전태일문학상은 방금 소개한 수상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문학상으로 나눠 모집한다. ‘전태일청소년문학상전태일이라는 한 노동자의 생애를 기억하고 그의 정신을 아직 때 묻지 않은 소년의 삶과 마음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표현한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많은 응모작들이 노동의 현장에 여전히 존재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직시하고자 했다. 그중 흥미로웠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시 부문: ‘임영규2/ 이강(고양예고)

 이강의 세 작품에는 그의 글투가 고스란히 보인다. 담백하게 툭툭 던지는 문장 속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고교생이 쓴 것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생각과 표현력이 깊다. 임영규는 한 학생의 알 수 없는죽음에 대한 작품이다. 화자는 영규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독자는 화자의 계속되는 추측을 따라가면서 영규의 죽음을 추정해볼 뿐이다. 쓰라림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죽음을 존중하는 것이 곧 삶을 존중하는 것임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산문 부문: ‘들개’ / 이정온(안양예고)

 심사평을 빌리면 그의 작품을 전태일재단 이사장상으로 합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적 노동문제를 얼마나 현재적으로 포착하는지, 그 해석을 얼마만큼 독창적인 소설적 문제의식과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는지를 고려할 때,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침착하고 날카로운 현실 인식 및 격앙되지 않은 문체가 돋보인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 노동자의 현실을, 그리고 그 현실과 마주하는 마음의 풍경을 서술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유년과 사탕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는다. 짧고 강렬한 만남의 순간들을 정확하게 짚는 정련된 문장이 인상적이다. 단편소설이 가진 미학적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이다.

(수상 작품들과 전태일문학상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 도서관, 서점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출처: dalgial@Wikipedia
출처: dalgial@Wikipedia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파른 산을 오르는 산악인의 힘겨운 노정을 위무하는 시인의 헌사지만 다른 축으로 보면 50년 전 평화시장에서 외쳤던 전태일 열사의 인간선언이 우리 시대의 가장 높은 정신입니다. 그때 이후로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을까요? 가장 높은 정신이 향해야 할 추운 곳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주변의 열악한 노동환경, 참사와 재해, 차별과 편견일 것입니다. 그들의 아픈 목소리를 듣고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전태일문학상이 지금껏 운영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살아남은 자의 도시머리말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