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과 18 허윤지

 19701113. 한 청년이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직접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며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그날 향년 스물 셋의 젊은 목숨이 사그라지며 이 땅을 떠나갔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전태일의 얘기다. 이 나라의 힘없는 노동자들을 위해 목숨까지 희생한 그 날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한국의 노동자들은 얼마나 개선된 노동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을까.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고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그의 울부짖음이 무색하게도 2020년 올해에만 택배기사 10명이 과로사로 숨졌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팬데믹의 시대는 택배기사로 하여금 담당해야 하는 물량을 늘어나게 만들었고 이는 전적으로 택배기사가 홀로 떠받아야 하는 몫이 되었다. 그렇게 지난 10월에만 세 명이 죽었다.

 정부는 과로사 방지 대책으로 밤 10시 이후 심야배송을 제한하고 주 5일 근무제 도입을 유도할 계획이라 발표했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는 권고와 유도 수준에 그쳐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혹자는 소비자들 스스로가 총알배송, 심야배송 등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총알배송과 심야배송이 전면적으로 금지된다고 해도 해당 물량이 낮 시간의 물량으로 가는 만큼 오히려 노동 강도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결국 택배를 담당하는 인력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력을 늘리면 물량 또한 나눠가지게 된다. 현재 택배 건당 수수료는 7~800원 수준인데 이중 기사에게 온전히 받는 돈은 500원 수준이다. 택배기사들이 욕심이 많아서 과로사할 정도로 과도한 물량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돈을 벌기 힘든 구조이기에 택배기사들은 자신의 건강을 훼손하면서까지 과로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해답은 택배의 건당 수수료를 인상하는 데에 있다. 택배 수수료가 오르면 물량을 나눠가져도 어느 정도 돈을 벌 수 있는 만큼 택배 기사가 늘어나도 수입에 큰 차질은 없고 노동 강도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곧 소비자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택배비가 오른다는 얘기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과연 우리가 택배 기사의 목숨까지 희생해가며 택배를 싼 값에 받아야 되겠냐고. 적어도 그들에게 정당한 값은 쳐줘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물론 택배비가 천원 내지 이천원 더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여태의 택배비는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비용을 치르지 않아왔던 결과다. 그리고 그 결과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전태일은 당시 대학을 졸업한 기자들보다 높은 월급을 받는 노동자였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안락한 길을 버리고 자신 월급의 7분의 1 수준을 받는 여공들과 함께 가는 길을 택했다. 전태일의 50주기를 맞는 지금, 우리는 누구와 함께 하는 길을 걸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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