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희 교수(기독교학과)
정덕희 교수(기독교학과)

 예전에 미국 유학 시절 경험했던 일이다. 필자는 2011년 가을 미국 뉴저지에 있는 한 신학 교에서  석사과정으로 유학을 시작했다. 숨가쁘게 첫 학기를 보내던 10월 31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이날  매우 신기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주말이라 늦잠을 자고 여유있게 일어나 보니 밖에 눈이 내렸다. 참 신기했다. 10월에 눈이라니. 미국 뉴저지가 원래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고는 들었는데 이렇게 눈이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눈이 조금 내린 것이 아니라 꽤 많이 쌓였다. 약30cm는 족히 더 온 듯했다. 때이른 첫 눈에 나름 낭만을 느껴보고자 두꺼운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하얀 눈이 너무 나도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때부터 갑자기 이상한 분위기가 엄습하기 시작했다. 나무 가지가 땅 위에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저기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위험하겠다 싶어서 서둘러 아파트로 돌아왔는데 순간 집이 정전이 되어버렸다. 캠퍼스 아파트 뿐만 아니라, 캠퍼스 전체, 그리고 그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된 것이다. 정전으로 인해 학교 캠퍼스는 한주간 휴교령이 떨어졌다. 그렇다면 왜 고작 눈 조금 왔다고 정전이 된 것일까? 눈 30cm가 미국의 한 도시 전체를 마비시킬 정도의 폭설인가? 그것은 분명 아니었는데 말이다.

 알고보니 그 원인은 매우 간단했다. 눈이 너무 이른 시기에 내려서 그랬다는 것이다. 당시 뉴저지를 비롯 인근 뉴욕주까지 수많은 지역에  정전이 되었는데 가장 큰 원인은 때이른 눈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원래 눈이라는 것은 낙엽이 떨어진 이후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내릴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나뭇가지가 앙상하면 그 위에 눈이 쌓이지 않기 때문이고, 그러면 아무리 눈이 많이 내려도 나무는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눈이 1m가까이 와도 나무가 뽑히는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낙엽이 지기 전에 눈이 오는 것이다. 당시 10월 31일은 낙엽이 떨어지기 전이었다. 눈 30cm는 그대로 나뭇잎과 나뭇가지 위에 쌓였고, 그 무게를 못이긴 나무들이 다 부러진 것이다. 그 일대 수많은 나무들이 힘없이 부러졌고 그렇게 부러지면서 전신주와 전기줄을 치는 바람에 정전이 되었다는 것이 당시 시 당국의 분석 결과였다. 듣자 하니 상당히 놀라웠다. 그러면서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라는 점이다. 보통 찬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지고 그러면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이 그저 ‘낭만’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그것이 거대한 ‘자연의 섭리에 따른 순서’라는 것을 그때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섭리는 반드시 순서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섭리가 순서대로 진행되면 우리는 매우 아름다운 첫눈을 맞이할 수 있게 되겠지만 순서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것은 ‘재앙’이 되어버리고 만다. 낙엽 떨어지기 전에 눈이 먼저 오면 이는 온 도시를 마비시키는 거대한 자연재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 역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결국 순리대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면 나무는  푸른 잎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그리고 찬 바람이 불면 그 나뭇잎은 붉은 색으로 변하고,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지면, 그때 흰 눈이 내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면 아무 문제 없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낙엽이 아직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흰눈을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 그저 빨리, 하루라도 빨리 흰눈이 와서 한 해를 마무리 짓겠다는 조급함이 우리 안에 있다. 하지만 흰눈이 빨리 오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님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것은 큰 불행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때 떠오른 성경구절이 하나 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전도서3:1)우리가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그 때를 기다리며 사는 지혜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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