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 교수(탈메이지교양·융합대학)
이영환 교수(탈메이지교양·융합대학)

 어미 새가 부지런히 먹이를 나른다. 아기새는 입을 벌린다. 봄날 캠퍼스를 품은 뒷산 풍경이다. 아기새는 날개깃이 다 자라면 스스로 날아 먹이를 찾아야 한다. 비행은 어미 새가 대신해줄 수 없다. 어미에게 배워 자신의 힘으로 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공부는 스승에게 배우면서 시작된다 .배우는 것이니 떠오르는 한자가 ‘배울 학(學)’자이다. 습(習)은 배운 것을 익히는 단계이다. 학습(學習)은  익숙한 말이면서 성장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다. ‘익힐 습(習)’은 새의 날개[羽]에 하얗다[白]는 뜻이 더해진 글자이다. 날개가 하얗게 보일 정도로 연습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스승이 가르쳐주면, 보고서를 쓰고 실험하며 배운 것을 구체화한다. 삶에 적용하고 익혀가는 우리의 모습이, 영락없이 아기새의 날갯짓과 닮았다. 벼랑 끝에 서서 허공에 몸을 던져 날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쉴 새 없는 연습은 용기의 근거이다. 무한히 노력하다가, ‘탁!’하고 허공을 난다. 비로소 먹이를 찾을 수 있고 길짐승이 두렵지 않다. 공자가 논어에서 배움의 첫 단계로 제시하며, ‘배우고 익히면 기쁘다’고 한 이유가 짐작된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열심히 하면 우등생이 된다. 주변의 이목을 끌며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성실한 학습으로 매력적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장학금을 받거나 취업에도 유리하다. 논어의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즐겁다’고 한 구절이, 왜 학문의 두 번째 단계인지 이해된다.

 학습을 열심히 하여 널리 명성이 퍼졌다. 나의 인격과 학문을 높이 평가하여 많은 이들이 나와 함께 하고자 한다. 심지어 먼 곳에서도. 배운 것을 세상에 드러내고 나누어 쓸 기회를 맞으니, 공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즐거운 단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노력한 결과를 인정받아 즐거운 것은 너무나 순조롭다. 왠지 고단한 내 배움의 여정과는 맞지 않고 남의 이야기 같이 들릴 것이다. 열심히 배워도 멀리서는커녕 가까운 사람 하나 알아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큰맘 먹고  공부해도 성적이 쉽게 오르지 않고, 공모전에 지원해도 늘 순위에 들지 못한다. 어느 정도 선행을  베풀어도 드러나지 않는다. 나의 배움이 진실하지 않아서 그런가? 그렇다면 누가 보더라도 성실히  배움에 임한 사람에게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공자는 이에 대한 답변을 학문의 마지막 단계로  준비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 사람, 이런 경지에 있는 사람을 군자에 가깝다고 했다. 배우고 익히는 기쁨은 자신에게 있고, 알아주는 것은 남에게 달렸으니, 더욱 성실히 배움에 임하며 때를 기다리라는 뜻이다. 배우면서 기뻐하고 인정받아 즐거워하기는 쉽다.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자기의 배움을 돌아보며 불평 없이 다시 도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용기 있는 사람만이 준비하며 ‘멀리서’ 찾아올 무엇인가를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졸업한 지10년쯤 된 학생이 얼마 전에 연락을 해왔다. 직장을 옮기는데 자기소개서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이력을 보니, 매우 초라한 직장에서 시작했다. 7번을 이직하는 동안 정보보안 분야에서 최고의 실무자로 성장한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고단하고 치열한 배움의 여정에 한동안  가슴이 뭉클해졌다. 지원서를 보니 이번에 도전하는 곳은 최종 직장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안정된 일터임이 분명했다. 이번 도전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졸업생에게는 ‘멀리서 찾아오는 벗’이 반드시 있을 것 같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내기보다는 자기의 배움에 충실해 왔기 때문이다. 금방 성과를 내라고 재촉하는 시대이다. 단기에 성공한 이야기가 이목을 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더디지만, 용기 있는 발걸음으로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는 배움의 여정이, 더욱 귀한 시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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