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노현(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장노현(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인터넷을 사용하다 보면 우리는 가끔(아니 자주) 자신이 로봇이 아님을 증명하라는 요구에 맞닥뜨린다. 어떤 시스템에 접속하거나 로그인을 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특정 사물이 들어있는 그림 카드를 고르거나 다른 필요한 확인 절차를 통해 스스로 로봇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우리 인간이 이미 인간-아닌 기술적 존재들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최근 개발된 ChatGPT는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적 존재의 가능성을 새롭게 보여주고 있다. GPT-3은 인간과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 높은 대화 생성이 가능하고, GPT-4는 창의적이고 미묘한 명령을 처리하는 수준까지 상호작용할 수 있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GPT를 학술논문 작성이나 시나리오 창작에 활용하는 등,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인간-아닌 기술적 존재들과의 상호작용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고도로 발달한 기술적 존재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면 인간과 인간-아닌 것들의 배치가 달라지게 된다.

 원래 인간-아닌 것들은 휴머니즘적 인간의 기준을 벗어나는 타자로 간주되었다. 휴머니즘적 인간이 보편적 이성과 합리성을 갖춘 근대적 주체라면, 그 타자들은 주체의 대응짝으로 부정성과 비정상성을 상징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간-아닌 그들은 인간을 상대로 종적 운명을 걸고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부정적이고 비정상적인 존재들이었다. 이에 반해 인간의 존재론적 위상은 이성의 가호를 받으며 완전성을 추구하는 도덕적이고 자기성찰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인간과 인간-아닌 것들을 이렇게 구분하고 가르며, 상호투쟁적 존재로 정의하는 것이 옳을까? 그것이 과연 우리 인간에게 유리한 방식일까?

 21세기 들어 생명공학과 인공지능 기술 등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인간과 인간-아닌 것들의 배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있다. 유기체와 비유기체, 태어난 것과 만들어진 것, 살과 금속, 신경체계와 전자회로의 경계가 유동화되고, 현실과 가상이 뒤섞이면서 실재는 위기에 처하고 있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런 새롭고 복잡한 배치들로 인해 분명 인간중심주의는 흔들리고 있다. 인간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가 교란되고, 당연시되었던 인간의 존재론적 위상이 무너지고 있다. 인간을 인간-아닌 것보다 우월하게 여길 어떤 객관적 타당성도 보장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인간의 정의와 경계에 대해, 인간과 인간-아닌 것들의 관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사유와 삶을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인간성’으로 고정된 휴머니즘적 인간의 표상을 뛰어넘어, 지금을 초월하는 새로운 단계로 성큼 진입하기 위한 지혜와 용기가 필요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지금의 인문학은 낡은 대상과 방법론을 버리고 새로운 인문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인간과 인간-아닌 기술적 존재들을 함께 사유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구축해야 한다. 인간을 둘러싼 인간-아닌 것들과 멈추지 않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인문학이 필요하다. 인문학은 이제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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