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창작학과 16 양현정

아주 가끔은 비가 되어 내리고 싶다

경주 여행을 갔을 때 시내버스 안에서 찍고 쓴 작품입니다. 비가 유리창에 달라붙어 흘러내리면서 다른 빗방울들과 뭉쳐 내리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잡생각

집 앞에 있는 마트 주차장입니다. 음료를 먹고 남은 쓰레기가 저렇게 덩그러니 버려져 있더라고요. 누가 버렸을까, 왜 버렸을까,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 등등 쓰레기 하나에 별별 생각을 다하고 있는 제 모습과 마주쳐 버렸습니다. 잡생각 때문에 잡생각이 나왔죠.

관계5. 균열

이곳은 광주 펭귄 마을의 한 골목입니다. 소위 말하는 빈티지 감성이 물씬 풍기는 거리였는데, 그래서 인지 헌 거울과 허름한 슈퍼, 갈라진 벽과 바닥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안에서 헐어진 것과 균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파괴와 균열의 시작은 작은 점이었겠지, 하는.

아파트

집에서 본 건너편 아파트의 모습입니다. 정확히는 오빠 방에서 창문을 열고 찍은 사진이죠. 그날따라 비도 왔었는데 아파트 풍채가 꼭 사람 같아 보이는 게, 빗속에 서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안쓰러웠습니다. 묘한 감정을 느끼고 나니 속 시끄러운 제 마음이 들여다봐 지더군요.

 

앞서 실린 작품들은 저의 SNS 계정에 업로드 되어있는 작품들입니다. 보여드린 작품들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저의 작품 계정을 찾아가시면 비슷한 작품들을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웹에 접속할 수 있는 디바이스(device)와 빵빵한 와이파이만 준비되어 있다면 말이죠. 이렇듯 요즘은 작품의 전시와 관람이 쉽고, 가까워졌습니다. 참 좋은 세상이죠? 이러한 작품 공유의 편리성때문에 저처럼 어플 혹은 웹에서 자신의 작품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배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말인 즉, 저뿐 아니라 여러분들도 마음만 먹으면 작가가 되실 수 있다는 뜻이죠.

지금까지 저는 불과 세 네 달 안에 아흔 점이 넘는 작품들을 공유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어려움혹은 번거로움의 키워드가 디지털 세대의 작품에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대적 특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작품을 그럴싸하게 제작하고 편집하는 과정들이 이전보다 훨씬 짧고 간결해졌거든요. 어떠한 영감이 떠올랐을 때, 외우거나 볼펜대를 굴릴 필요 없이 바로 찍거나 적어서 남길 수 있습니다. 뿐인가요? 방 안에 각 잡고 앉아 깨작거릴 필요도 없이 내가 서있는 곳에서 빠르게 작품을 만들어 버릴 수 있죠. 그래서 저는 버스나 육교 위, 산책로 등 주로 이동 중에 많은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 디지털 기술이 문학과 예술에 가져다주는 이점을 꼭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작가, ‘Writer’에 대한 기존의 관념은 글을 쓰는 사람쯤에 그쳤죠. 그러나 이제는 작가가 작품 제작의 모든 과정에 개입하거나 주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글과 그림의 구성, 글씨체, 글씨나 자막의 배치 등편집적 요소까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작가 분들께는 부담이 아닐 수 없죠. 더 많은 예술적 역량과 센스가 요구되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작가의 권한이 그만큼 넓고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작가적 세계를 더욱 다채롭게 뻗쳐볼 수 있다는 장점이 큽니다.

디지털 세대의 예술이 어떠한 특·장점을 가졌는지 가볍게 알려드렸습니다. 이 정도면 제가 왜 제 작품들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아시겠나요?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렇다면 제 작품은 어떻게 보셨나요? 괜찮다, 싶은 시 구절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사진이 더 마음에 드셨나요. 어떤 것이 더 마음에 드셨든지 분명히 시와 사진을 함께 보게 되셨을 겁니다. 여기서부터 제 작품은 시작되죠. ‘미디어 언어들이 기존의 언어 형식과 어울려, 하나의 예술을 완성하는 시대가 됐음을 보여주는 데부터요.

근래 사이버공간에서 유행하는 작품들은 손 글씨(캘리그라피)와 감성글, 일러스트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 작품 형식은 감성글에 가장 가까운 것 같네요. 감성글은 예쁜 그림이나 감성적인 사진들을 배경으로 한, 짧고 고찰적인 글을 말합니다. 자신이 쓸 글과 어울리는 사진들을 찾아 원하는 대로 편집하는 것이 보통이죠. 감성글과 제 작품 형식이 가깝다고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감성글과 제 작품 모두 빠른 독서감각적인 이미지를 선호하는 최신의 작품 경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감성적 글쓰기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도 한 몫을 하겠죠.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감성글과 제 작품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감성글의 경우, 작가의 시에 삽화가의 그림을 넣는 시화나 출판사에서 시와 그림을 조화롭게 편집해놓은 일반 시보다는 작가의 권한이 한층 앞서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사진이라는 요소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해서 대부분은 다른 누군가가 찍은 사진을 끌어 와 사용합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 사진을 직접 찍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찍을 때 느꼈던 감각과 사유를 그 위에 글로 남깁니다. 적어도 제 작품 안에서는 사진이 시를 돋보이게 해주는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는 뜻이죠. 사진과 시가 동등한 시적 요소로 해석되고, 그 둘이 만났을 때만이 시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장르 문학. 이러한 시 문학 형태를 바로 디카시라고 합니다.

제가 디카시를 처음 접한 것은 전공 수업에서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였죠. 이는 디카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자신만의 사유가 담긴 명칭을 새로 붙이고 있습니다. ‘걸으면서 하는 독서.’ 그에 맞게 짧은 시 형식을 취하는 동시에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이 시대를 위한 새로운 독서 방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걷는 독서는 작품 수용자에게 창작자로서의 가능성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창작을 간단한 놀이쯤으로 보이게끔 만들어 창작자의 수용 범위를 넓혀주는 것이죠. 저는 꽤 놀라웠습니다. 문학 예술가들이 사실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었으며, 그처럼 발전적인 생각을 뿜어내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말입니다. 더 나아가 저 또한 협소한 생각에서 벗어나 더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작품 활동을 해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잡았습니다. 해서 저 역시 과제를 핑계 삼아 작품 계정을 만들었고, 새로운 저만의 명칭(찰나의 我)을 만들어 지금까지 작품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디지털 세대의 문학은 그 형태 그대로 머무르지 않고, 자가 분화와 발전을 통해 기존 문학 패러다임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래서 지금 존재하는 디카시도 디카시의 마지막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더 새롭고, 발전된 모습의 디카시가 등장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위해 저 또한 다채로운 시도들을 해볼 계획입니다. 우습고 건방진 발상이지만 제가 하는 작품 활동 하나하나가 문학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대단한 사명이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시대적 요구를 읽을 줄 아는 기본적인 통찰력과 그에 맞는 작은 아이디어만 갖추고 있다면 누구나 가능하죠. 예술이 이렇게 쉬울 수도 있다니,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있다니! 매력적이지 않나요? 간단하면서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것. 짧지만 생각하게 만들고, 의미 있지만 들여다보면 별 것도 아닌 것. 여러분들도 한 번 시도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일상 속에서 지나치고 있었던 여러분만의 작가적 모먼트를 꺼내세요. 그리고? 그냥 만들어 버리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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