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창작학과 16 김아현

 현대에서 소설이란 굉장히 다양한 영역까지 아우를 수 있는 거대한 괴물 같다. 괴물이라고 하니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데 그만큼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영역은 인터넷 소설, 하이퍼 서사, 웹툰, 게임 스토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다. 생활에서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텍스트는 감상의 차원을 넘어서 독자를 대상으로 작용한다. 독자로 하여금 능동적인 수용을 넘어서 독자 스스로의 변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명확히 정의할 수 없지만 소설을 여러 측면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소설이라는 것은 본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다가 문자로 정착했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보다 입으로, 언어로 구현될 때 내용은 더 힘을 얻는다. 아무런 생각이 없던 주제에 대해서 어쩌다가 자신이 했던 말이 곧 생각이 되어있음을 깨닫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역시 마찬가지로 문자로 기록할 때에는 쓰지 않았을 때보다 원하는 바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 옛 선조들도 이런 효과를 누리기 위해 병자호란을 배경으로박씨부인전을 통해 현실에서 받은 아픔과 패배를 역전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냈고 또한 여성의 지위를 향상 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또한 소설은 언어를 재료로 형상화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예술보다 창작자의 의도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런 특성으로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자들이 계몽 운동의 수단으로 임꺽정등의 소설을 쓰기도 했고 사회주의자들도 카프(KAPF)문학으로 소설과 시를 사회 혁명의 수단으로 삼았다.

 소설의 개연성은 허구이지만 현실화될 수 있거나 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는 장치다. 곧 허구는 현실성과 진실성을 내포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은 현실과 맞닿아 있는 어느 부분에서 현실을 그대로 비추기도하고 현실을 극히 구부려서 그 대상의 참다운 실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즉 허구로 보편성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 때문에 소설은 치유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할극으로 심리를 치유할 수 있듯이 소설도 같은 맥락이다. 소설에서 카타르시스 즉 감정 정화를 경험할 수 있는데 가상의 상황이 독자에게 위로가 되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소설은 표현과 서사는 작가의 자유지만 가장 기저에 깔린 주제 의식은 자신이 믿고 따르는 어떠한 가치가 담겨있다. 분명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많은 독자는 무가치한 소설을 결코 잘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독자는 문학에 대해 전반적으로 선하고 의미 있는 것을 바라고 기대한다는 점이다. 마치 세간 사람들이 종교에서 절대적 선을 바라는 것과 같다. 이처럼 소설은 인간의 인지뿐만 아니라 정의적 영역에서 이상적인 가치를 다룬다.

 작가는 투명한 지배자이다. 그러기도 그러한 것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정말 경건한 자세로 작품에 임한다. 책 속에 오롯이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처럼 집중하고 스스로 현실을 떠나 이야기로 들어간다. 이런 순종적인 향유자가 어디 있을까! 사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진 않지만 텍스트로 들어가는 순간만큼은 어린 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이다. 작가는 이런 양 같은 독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고 이데올로기로 독자들을 엮어낼 수 있다. 작가와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흰 종이와 글자를 통한 간접적 만남이 정제된 결과물로서의 작가와 작품을 만나기 때문에 지배적 측면에서 더욱 효과적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숨바꼭질에서 숨는 자이다. 작가의 창조적 위치는 작품에서는 신과 다름이 없다. 대부분의 독자는 가려진 발 뒤로 작가의 진짜 모습과 작품에서의 의도를 유추하고 추론하는 것을 좋아하고 원한다. 지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독자일수록 숨겨진 의미, 숨어 있는 작가를 찾는 예리한 술래이다. 또 재미있는 점은 작가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신이 숨긴 의도를 독자들이 찾아내주기를 원하고 있다.

 또 이런 부분에서 본다면 작가는 자신의 존재의 노출을 즐긴다. 먼저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불특정 다수에게 던지는 말뭉치와 같다. 거기에는 작가의 비슷한 삶이 녹아들어있을 수도, 혹은 기껏해야 머리카락 한 올 껴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이렇듯이 자신을 어떤 방법으로든 보여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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