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시스템공학과 4학년 이채주

밤에 쓰는 편지

이채주

 

할아버지 집 미당 수돗가에는 항상 숫돌이 놓여있었다.
내가 할아버지 집에 가면 할아버지는 수돗가에 앉아 칼을 갈곤 했다.
칼이 돌을 가는 건지, 돌이 칼을 가는 건지, 아니면 칼이 할아버지를 가는 건지,
움푹 파여진 숫돌만큼이나 굽은 할아버지의 등.
그 어깨 위엔 아빠, 삼촌, 고모와 할아버지의 인생이 힘껏 앉아 있고,
우리 아빠의 오른쪽 어깨엔 나와 동생들,
그리고 왼쪽 어깨엔 아빠의 삶이 묵직이 올라가 있다.
이렇게도 무거운 인생을 어깨에 짊어지고 아빠와 할아버지는 기나긴 이어달리기를 해왔다.
 
당신들은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나요.
누구를,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도 갈고 닦아 왔나요.
정처 없이 달려온 이 길을 뒤돌아 볼 틈도 없이 그 고귀한 인생을.
그 깊이는 헤아리지도 못하고 나는 알지도 못해요.
내가 당신이 되어 당신의 모든 짐을 안고 갈 수 있길.
이제 자유로이 헤엄치며 잔잔한 물결로 그저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만 해주세요.
오늘도 당신들의 밤은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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