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근 교수(기독교학과)
최영근 교수(기독교학과)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천주교(가톨릭)로부터 시작되었다. 개신교(프로테스탄트)에 비해 100년 앞서 전래된 천주교는 조선 말기의 완고한 유교적 사회체제와 위정척사와 쇄국정책을 주장하는 배타적인 정치적 환경 속에 극심한 박해를 받으며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와 신분계층을 불문하고 모진 박해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위대한 정신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끼쳤다. 무엇이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이들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붙들게 하였을까? 당시 천주교인들의 심문기록에 따르면 천민 출신의 한 천주교인이 신앙을 버리고 배교하라는 포청 관원의 위협에 대하여 세상에서 천국을 경험하였는데 신앙을 포기할 수는 없고, 영원한 천국을 눈앞에 두고 죽음이 두려워 신앙을 버릴 수는 없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경험하지 못하였던 그가 기독교 신앙 안에서 양반과 상민과 천민의 벽이 허물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로 어우러지는 진정한 삶을 경험한 것이 그가 말하는 천국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교회를 통해 나타날 때, 소외와 차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절망을 이기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죽음의 위협조차도 억누를 수 없는 생명의 능력이 되었다.

 신앙의 자유가 없었던 조선 말기에 개신교 신앙을 받아들였던 최초의 개신교인 중 하나인서상륜의 사례도 위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상륜은 평북 의주에서 태어난 양반출신 상인으로서 1879년경에 국경지역인 만주의 영구에 장사하러 갔다가 병에 걸려서 죽을 지경에 놓였다. 당시 만주지역에서 조선인을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하고 있었던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소속 선교사 존 매킨타이어(John McIntyre)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던 서상륜을 선교회 병원으로 데려가 극진히 치료하여 생명을 구하였다. 그는 치료비를 낼 형편도 못 되었던 자신을 극진히 보살핀 외국인 선교사에게 커다란 감동을 받았고, 그의 생명을 구원한 기독교와 그가 평생 신봉한 유교의 가르침 사이에서 갈등하였다. 당시 기독교를 받아들이면 처벌을 받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서상륜은 매킨타이어가 건네 준 성경을 읽으며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탐색하였다. 그는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신분을 앞세워 자만했던 자신의 위선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다른 사람의 재산과 생명을 가볍게 여겼던 자신의 죄악을 깨달으며 회개하였다. 또한 자신의 흉만 보고 말도 하지 않으며자신을 버린 물건같이 보는다른 사람들과 달리 형제처럼 사랑하고 권면하며 가르치고”, “죽을 인생을 구원해준선교사의 사랑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살리는, 사랑과 은혜의 종교인 기독교를 믿기로 결단하였다.

 기독교 신앙의 힘은 절망과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다. 삶의 막다른 길목에 가로막혀 절망하고 있을 때,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외면당할 때, 어찌 할 수 없는 인생의 위기 속에 힘겨워하고 있을 때, 조용히 다가와 손 내밀어 어루만지는 그리스도의 위로와 치유의 손길이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와 멀게 만 느껴지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생생하고 뜨겁게 다가오는 것은 은혜와 사랑을 먼저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이웃에게 포용과 환대를 베풀 때이다. 그리스도인들의 포용과 환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통로가 된다. 그리스도는 강도만난 이웃에게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존재가 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거기에 천국이 임하고 생명이 일어난다. 포용과 환대야말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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