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미디어센터 신문편집부 편집장 김 산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진 현재, 국제유가가 바닥을 치다 못해 뚫어버린 날이 있었다. 420일 미국 서부 택사스유(WTI)는 배럴당 37.6달러를 달성해 이론적으론 원유를 사면 돈을 받을 수 있는 웃픈 일이 발생했다. 사상 초유의 유가 폭락 사태로 금융시장은 혼란에 빠졌고 수많은 투자자가 손실을 봤다. 원유는 말 그대로 똥값이 됐다.

모두가 황홀한 표정으로 국제유가를 바라보는 사이, 한 사람 만큼은 애태우고 있었다. 그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시 국제유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지자 원유를 7,500만 배럴 정도 비축하겠다고 덤덤하게 말했지만, 한편으론 속이 탔을 거다. 그가 매일 같이 국제유가 그래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트럼프와 국제유가 사이에는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어 굉장히 흥미롭다. 이 연결고리를 설명하기 위해선 미국 서부 텍사스유(WTI)가 뭔지, 트럼프에게 있어 왜 이것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트럼프에게 있어 올해는 대선을 앞둔 가장 중요한 해다. 그만큼 민심 살리기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는 좋지 않다. 갈수록 늘어나는 무역 규모 적자에다 작년 중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인한 손실까지 더하면 미국경제는 악화일로다. 거기다 코로나19 사태로 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으니 국민은 하나 같이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주목하는 국제유가, WTI(미국 서부 텍사스유)란 무엇일까? 흔히 미국의 셰일가스라는 말이 한창 이슈됐던 적이 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원유가 아닌 미국 서부지역 셰일층에서 뽑아낸 천연가스를 말한다. 셰일가스는 화석연료와 석유를 대신할 미래의 연료라 불린다. 전 세계적으로 방대하게 매장돼있지만 이를 추출하기 위한 기술과 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쉽게 추출할 수 있는 국가는 없었다.

2000년 후반이 되자 미국이 셰일가스를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셰일가스 추출을 위한 예산을 전격 지원했고, 관련 산업이 무궁무진하게 발전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미국에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에너지원이 제공됐다. 실제로 2010년 북미 지역의 셰일가스 생산량은 2000년에 비해 15.3배나 확대됐고, 2009년 이후 미국은 러시아를 제치고 천연가스 1위 생산국에 올랐다.

이때다 싶었던 미국은 원유 최대 수출지역인 중동에 엄포를 놨다. 자신들도 언제든지 셰일가스를 뽑아 쓸 수 있으니 중동지역 원유생산과 경쟁을 할 것이라 말했다. 이때 셰일가스 관련 주는 폭등을 했고, 당시 유가 역시 급등했다. 여러 전문가와 투자자 사이에서는 미국이 앞으로 새로운 에너지원 중심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마이너스 유가 사태를 짚어보자. WTI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는 얘기는 다시 말해 100만큼 투자해도 잃는 것이 두 배, 세 배가 된다는 말이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바로 셰일가스 회사에서 일하는 백인 블루칼라.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상승할수록 그들에겐 호재지만, 반대의 경우는 악재다.

셰일가스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일반 원유를 추출하는 것보다 많은 비용이 든다. 셰일가스를 추출하기 위한 최소 비용, 그러니까 추출 마진은 40달러다. WTI 가격이 배럴당 40달러 선에서 떨어지면 기계가 멈추고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될 수 있다. 미국연방준비제도(Fed)의 에너지 조사에 따르면 셰일 생산자들의 평균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50달러라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원유 폭락사태로 미국의 일부 셰일가스 회사가 문을 닫았거나 손실을 봤다. 그들은 트럼프를 가장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미국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백인 블루칼라, 그러니까 지난 2016년 대선 때 트럼프를 지지했던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국제유가 하락은 곧 생계유지와도 직결되는 문제기에 트럼프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이다.

현재(61일 기준) WTI는 배럴당 35.5달러로, 지난 420일보다 빠르게 정상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회복됐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 현 상황이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인 교통, 물자의 이동 감소에 따른 에너지 수요의 감소로 원유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 국제유가가 낮은 수준에서 머물고 있기에 이러한 상태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제유가를 트럼프 재선 여부의 전부라 얘기할 순 없지만, 관련이 아예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게 바로 이러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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