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전태일 열사 분신 항거한지 50주기가 되는 해다. 그의 노동해방과 인간해방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전태일문학상’도 올해로 28주년을 맞이하였다. 제27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작품집 는 탄탄한 문장력과 덧붙여 노동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성찰이 잘 드러나 있다. 수상 작가들이 말하고 싶었던 노동의 가치란 무엇일까.2019년에 진행된 제27회 전태일문학상은 약 407명의 사람이 신청했으며, 부문별로 시 753편, 소설 118편, 생활·기록문 104편이 접수되었다. 시 부문: ‘똑같은 손’ 외 4편 / 김철
벼가 고개를 숙이는 가을은 일 년 농사의 결실인 추수가 머지않은 시기다. 농부들은 추수를 끝마친 들판에 모닥불을 피움으로써 농사를 끝맺는다. 한 해 동안 가꾼 곡식을 수확하고 들판의 화려함이 거둬지는 순간, 빈 들판에는 모닥불이 피어난다.문학에서 모닥불은 작가가 흔히 사용하는 비유적 매개체이다. 그렇기에 여러 작품 속에서 다채롭게 드러난다. 그중에서 모닥불의 이미지가 잘 떠오르는 시와 소설을 각 2편씩 선정하였다. 따뜻한 방 안에서 모닥불을 떠올리며 느긋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함께 알아보자.1. 시와 모닥불(1) 「고양이는 불
누구나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은 기립박수를 받아야 한다.우리는 모두 세상을 극복하니까.- 책 ‘원더’ 中에서. 삶이라는 건 어쩌면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지 않을까. 물속에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팔과 다리를 움직여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영 가라앉고 만다. 삶도 마찬가지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불안과 고통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할 때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어기가 바로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어기는 태어날 때부터 안면기형을 앓았다. 스물일곱 번의 큰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어기를 바라보
보름달 보름달을 품은 채 걸어가는 그녀우아한 듯 보이는 걸음걸이가 위태롭다 도와주려 다가가니등의 털과 꼬리를 곤두세워하악질을 해 댄다 살그머니 그녀의 발자취를 밟는다후미진 골목 깊숙이 가늘고 긴 꼬리를 내민 털뭉치 하나 해가 머리 위에 떠 있는 지금, 털뭉치 사이로 보름달 하나가 굴러나온다 어느 새,여섯 개의 보름달이 그녀의 품 속에서꼬물거린다 새끼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노을빛을 담아유리알처럼 반짝거리는구나
무더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8월. 살갗을 찌는 더위에 에어컨을 켰다가, 어제 날라 온 전기세 고지서를 보고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다시 전원 버튼을 누른다. 매년 이맘때 뉴스에서는 역대급 더위라는 제목의 보도가 연이어 나온다. 단전에서 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수십 번 떨어진 A 회사의 불합격 통보 메일의 내용만 되뇐다. [귀하의 자질만큼은 높이 평가 되었지만 제한된 인원을 선발해야 하는 상황이라 부득이하게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갑갑함에 못 이겨 들어간 SNS 속에 친구들의 프로필에는 합격 내용, 취업 내용만 눈에 보인다.
공백 김동주 무언가로무엇을채워가다 보면 그것이부족할 수도넘칠 수도 또 그것이작을 수도클 수도 아무것도없는그 ‘0%’가 온전히 너로‘100%’를 채울 때 비로소공백은 바퀴를 잃고고백으로 멈춘다.
밤에 쓰는 편지이채주 할아버지 집 미당 수돗가에는 항상 숫돌이 놓여있었다.내가 할아버지 집에 가면 할아버지는 수돗가에 앉아 칼을 갈곤 했다.칼이 돌을 가는 건지, 돌이 칼을 가는 건지, 아니면 칼이 할아버지를 가는 건지,움푹 파여진 숫돌만큼이나 굽은 할아버지의 등.그 어깨 위엔 아빠, 삼촌, 고모와 할아버지의 인생이 힘껏 앉아 있고,우리 아빠의 오른쪽 어깨엔 나와 동생들,그리고 왼쪽 어깨엔 아빠의 삶이 묵직이 올라가 있다.이렇게도 무거운 인생을 어깨에 짊어지고 아빠와 할아버지는 기나긴 이어달리기를 해왔다. 당신들은 그 누구도 가르쳐
모르모트*우혜린 플로피 헷을 쓰고 사람 많은 곳을 걸어본 적 있습니까 그렇다면 햄스터를 길러 본 적은 있습니까 우리가 기른 건 모르모트일까요 햄스터일까요 감각을 잃어가는 모르모트의 생애는 잘 모릅니다 다만 운 좋았던 모르모트를 압니다 꽃집으로 숨어 들어온 플로피 헷을 쓴 하얀 모르모트, 햄스터라고 불러주기로 합니다 다만 플로피 헷을 벗기고 싶었습니다 물웅덩이에 담갔습니다 모르모트는 햄스터가 될 수 없습니다 모자가게에는 모르모트가 앉아있습니다 나는 모자를 고릅니다 플로피 헷만 가득한 모자가게입니다 얼굴가리기엔 플로피 헷이 제격이죠 모
현대에서 소설이란 굉장히 다양한 영역까지 아우를 수 있는 거대한 괴물 같다. 괴물이라고 하니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데 그만큼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영역은 인터넷 소설, 하이퍼 서사, 웹툰, 게임 스토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다. 생활에서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텍스트는 ‘감상’의 차원을 넘어서 독자를 대상으로 ‘작용’한다. 독자로 하여금 능동적인 수용을 넘어서 독자 스스로의 변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명확히 정의할 수 없지만 소설을 여러 측면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소설이라는 것은 본디 입에서 입으로
내가 들고 있는 활은 현이 다섯 개입니다. 두 옥타브 낮은 시까지 낼 수 있어요. 정확하게 측정하진 않았지만 아마 그 소리는 30헤르츠 정도겠지요. 음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지금 한 번 켜보겠습니다…. 들렸나요? 음 같지도 않지요? 얇은 바람이 성급하게 지나가는 소리 같을 거예요. 사실 현이 다섯 개까지도 필요 없어요. 가끔 집에서 혼자 시험해 보곤 합니다. 두 옥타브 낮은 시가 콘트라베이스가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음도 아니고요. 마음만 먹고 집중하면 더 낮게도 가능합니다. 그것을 시험해 보는 것이 제가 집에서 하는
나는 그 애의 엄마라는 걸 부끄러워하는 내가 싫어요. 그 애는 왜 나로 하여금 그 애를 부정하게 하고 나조차 부정하게 하고 내가 살아온 시간 모두를 부정하게 만드는 걸까요. - 책 ‘딸에 대하여’ 中 책을 읽는다는 건 감정소비가 심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의 심리 위주로 진행되는 소설이나 우울한 묘사로 표현된 책은 유독 더 읽기 힘들다. 이 책이 그랬다. 퀴퀴한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젠의 장례를 끝으로 책을 덮었을 때, 개운하지 않고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요양보호사인 어머니의 입장에서 진행된다. 스
아주 가끔은 비가 되어 내리고 싶다경주 여행을 갔을 때 시내버스 안에서 찍고 쓴 작품입니다. 비가 유리창에 달라붙어 흘러내리면서 다른 빗방울들과 뭉쳐 내리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잡생각집 앞에 있는 마트 주차장입니다. 음료를 먹고 남은 쓰레기가 저렇게 덩그러니 버려져 있더라고요. 누가 버렸을까, 왜 버렸을까,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 등등 쓰레기 하나에 별별 생각을 다하고 있는 제 모습과 마주쳐 버렸습니다. 잡생각 때문에 ‘잡생각’이 나왔죠. 관계5. 균열이곳은 광주 펭귄 마을의 한 골목입니다. 소위 말하는 빈티지 감성이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바깥은 여름, 입동 中- 무슨 일을 할 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세상엔 많은데 지금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하는 많은 고민들 사이에 자신감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주위에 늘어간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책이다.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너무나 유명한 김애란 작가의 5년만의 단편집이다. 총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책은 제
동화의 사전적 정의는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童心)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가끔 사람들이 저에게 동화란 무엇인가 물어보면 저는 ‘어린이부터 즐길 수 있는 동심(童心)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라 말하곤 합니다. 어떤 소설은 청소년부터 어떤 소설은 대학생이 되어서야 즐길 수 있다면 동화는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동화가 포괄적으로 독자를 품을 수 있는 이유는 동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동심은 단순히 어린이 마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켜나가야 할 보편적 진실을 말합니다. 이